인어공주
인어공주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12.21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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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칼럼
김기연 <민주노총 충북본부 대외협력부장>

"한 발 다가가면 두 발 도망가는" 밀당(밀고 당기는) 연애담을 그린 드라마.

"왜 내 눈앞에 나타나. 왜 네가 자꾸 나타나. 두 눈을 감고 누우면 왜 네 얼굴이 떠올라…"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OST 가사처럼 상사병에 걸린 김주원(현빈 분) 곁엔 길라임(하지원 분)의 환영(幻影)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길라임의 환영을 떨쳐내고자 읊조리는 주문도 덩달아 화제다.

하지만, 빈부의 계급격차가 심한 두 사람의 밀당은 행복하지만은 않다. 가난한 길라임은 김주원을 사랑하지만, 그의 미래를 위해 어느샌가 물거품이 될 '인어공주' 신세다.

물에 빠진 왕자를 구해 주고, 그를 사랑하게 된 인어공주는 마녀와의 '불공정 거래'로 인간이 됐다.

마녀는 인어공주에게 다리를 주는 대신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훔쳤다. 그나마 얻게 된 다리는 걸을 때마다 바늘에 찔리는 듯한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여기에 덧붙여 마녀는 왕자가 다른 여자와 결혼하면 생명을 앗아간다는 조건도 덧붙였다.

인어공주와 재회한 왕자는 인어공주의 아름다움에 반했지만, 왕자는 이웃나라 공주와 결혼한다.

이웃나라 공주가 자신을 구한 것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말을 할 수 없는 인어공주는 속앓이를 하고,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공주의 언니들이 동생을 살릴 방법을 모색한다. 동이 트기 전에 마녀의 칼로 왕자를 찔러 죽이면, 다시 인어공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어공주는 사랑하는 왕자를 찔러 죽일 수 없었다. 끝내 그녀는 칼을 바다에 던지고, 자신의 몸도 던져 물거품이 되고 만다.

재벌 3세 김주원의 상속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길라임이 '인어공주'에게 동병상련의 정을 느끼는 것은 이 때문이다. 김주원이 길라임과 결혼하는 순간 '사랑'을 제외한 김주원의 모든 것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최근 내가 만나는 이들은 '인어공주'가 될 것을 강요받고 있다. 그(녀)들은 자신의 소중한 노동의 대가로 응당 지급받아야 할 5억여원을 포기했다. 자존심도 버렸다. 사용자에게 사과하고, 자신들의 처지를 호소할 1인 시위도 중단하고, 법적 대응도 취하했다. 후원인들에게도 일일이 찾아가 시설 정상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생일잔치를 열어주고, 간식거리를 사준다. '선생님'이란 공식 호칭 대신 '엄마, 아빠' 또는 '이모, 삼촌'으로 가족애로서 아이들을 돌봐왔다.

미혼모 등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66명의 아이기에 더 큰 애정을 쏟았다.

그런 아이들이 이제 얼마 뒤면 뿔뿔이 흩어질 상황이다.

눈치 빠른 아이들은 불안해 하며 그(녀)의 전화번호를 묻고, 그(녀)들의 집에서 함께 살자고 애걸복걸한다.

충북희망원 이야기다.

임금을 포기하고, 사비를 털어 아이들의 생일상을 차려주던, '선생님'이라는 격식과 규율, 권위 대신 '엄마, 아빠, 삼촌, 이모'의 가족애를 선택한 그(녀)들과 아이들과 생이별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다음 달 6일이면 시설폐쇄를 앞둔 그(녀)들의 깊은 사랑을 '인어공주 사랑'이 되도록 지켜볼 수만은 없다.

그(녀)들에게 자위수단으로 "김수한무" 주문을 읊조리라는 잔인한 강요도 해선 안 된다. 충청북도와 청주시가 '인어공주'로 사라질 그(녀)들과 아이들을 위해 행정력을 발휘할 때다.

'인어공주'의 슬픈 현실을 깨닫기엔 아이들은 너무 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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