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와 톨스토이즘
톨스토이와 톨스토이즘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0.12.19 2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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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연지민 <교육문화부장>

영화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을 보았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리나', '부활'등으로 세계 대문호로 추앙받고 있는 톨스토이의 말년의 궤적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우선 위대한 문호의 인생 여정 중에서 말년을 담은 영화라는 데 뜻밖이었다. 화려한 시절과 명성의 시기를 생략하고, 아스타포보의 작은 역에서 죽음을 맞이한 톨스토이의 마지막 삶에 주목하고 있었기에 말이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역전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톨스토이의 삶을 회자하며 인생무상을 말하곤 했다. 살아 생전 문인으로 최고의 반열에 올랐음에도, 말년에 보여준 그의 삶은 허무감을 주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살아 있는 영웅과 영웅을 만들기 위한 사람들, 그리고 현실적인 아내의 모습을 담아내며 인간적인 톨스토이의 모습에 초점을 두고 있다.

무소유 사상을 현실에서 실천하려던 톨스토이는 당시로선 획기적인 사건을 도모한다. 자신의 전 재산과 저작권을 대중들을 위해 사회에 환원하는 일이다. 이 일로 아내와 심한 갈등을 겪게 되지만, 결국 가출해서 역에서 죽음을 맞이하지만, 사상가로서 톨스토이가 보여준 모습은 꾸밈없이 진솔하게 그려진다.

지엽적인 가족에 대한 사랑에서 머무느냐, 아니면 대중을 위한 인류애로 큰 사랑을 펼쳐 가느냐의 기로에서 보여주는 톨스토이의 내면은 거인다운 면모와 소박한 인간미를 보여준다.

톨스토이가 진정한 인간의 삶의 목표는 사랑이라고 주장했던 사상은 이처럼 현실과 이상의 갈등이자, 사랑과 명예의 실천이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반면 82세의 톨스토이를 가출하게 만든 아내 소피야는 현실적인 여자다. 이상을 꿈꾸고 실현하려는 남편에게서 사랑 받길 원하고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지극히 평범한 여자다.

영웅의 그늘에 가려 희생적인 삶을 살면서도 마지막까지 사랑을 포기하지 않은 여인.

그런가 하면 톨스토이즘을 만들고자 했던 그의 수제자는 톨스토이의 마지막 죽음마저 영웅만들기에 주력한다. 사상가답게 죽음을 맞이해야만이 완성된 톨스토이즘이며, 완전한 신적 존재로 톨스토이가 전설이 되어 살아남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톨스토이의 신념을 확립하기 위해 공동체를 만들면서도 톨스토이가 말하는 '사랑'을 본질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채 금욕으로 받아들이거나, 자신의 영역을 강건히 만드는 울타리로 악용하기도 한다. 또한 재산권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서약이 바뀌어질 것을 두려워해 임종을 보기 위해 달려온 아내 소피야 앞을 가로막는 데 서슴지 않는다.

강한 신념이 빚은 추종의 변질에는 인간으로의 톨스토이보다 영웅 톨스토이가 필요했던 것이다.

톨스토이는 그들이 원했던 것처럼 아스타포보 작은 역에서 극적인 죽음으로 인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그의 임종이 알려지면서 위대한 문학가이며, 종교가이자 사상가인 톨스토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이 역으로 몰려든다. 영웅이 떠난 자리엔 낡은 영상 필름 속에 남아 있는 톨스토이의 흔적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며 여운을 준다.

영화는 두 시간 동안 한 인간의 마지막 인생을 다층적이면서도 심도있게 이야기한다.

톨스토이와 톨스토이즘. 영웅과 영웅을 만드는 사람들의 간극이 어찌 옛사람들만의 이야기이겠는가. 시대를 달리해도 곳곳에선 소소한 영웅 만들기에 주력하는 현대인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자문해 본다. 지금 우리에게 영웅은, 스승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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