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모습과 닮은꼴입니다
선생님 모습과 닮은꼴입니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10.21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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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문화콘텐츠플래너>

선생님! 살아남은 자들의 시간으로 벌써 며칠이 지난 오늘에서야 저는 떨리는 마음으로 제 스마트폰 전화번호부를 열어 저장돼 있는 선생님의 번호를 지우려고 합니다.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부음을 접한 지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그날 새벽 저는 습관처럼 백화산을 올랐고, 그 산중턱에 있는 가족바위를 지나면서 때 아닌 가을비를, 서러운 통곡과도 같은 굵은 비를 만났습니다.

그러면서 살아있음과 죽음, 그리고 그 맑은 영혼을 지상에서 천상으로 이어주는 빗줄기의 비장함을 새삼 느꼈습니다.

선한 죽음을 하늘도 애통해 하면서 내리는 빗줄기의 처연함에서 저는 선생님의 커다란 은혜와 남아 있는 제자의 애절함을 간신히 위로합니다.

김진기 선생님!

불러도 불러도 그리움이 사무치기만 하는 선생님의 존함을 되뇌어보는 일도 이제는 마지막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월은 참으로 많이도 지났습니다. 1980년대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쫓기듯 군대를 다녀온 뒤 복학을 망설이고 있던 즈음 저는 선생님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습니다.

살아남아 지구상의 공기를 호흡하고 있는 무리들과 정의와 자유, 민주주의라는 이름아래 숭고한 목숨을 기꺼이 바친 고운 넋들과의 간극에서 뜻을 알지 못하는 자괴감으로 몸살을 앓고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산을 사랑하시고, 그 산위에 올라 인간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자연이 만든 경이로운 풍광을 사진에 담는 일을 좋아하시던 선생님.

선생님과 함께 소백산을 그리고 어머니 산이라 일컬어지는 지리산 종주 산행을 거듭하며 온몸으로 받아들였던 겸허한 인간에 대한 가르침은 지금껏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선생님! 세상일이라는 것이 참으로 황망하고, 세상 사람들이 참으로 두려운 대상이라는 것쯤은 모질기만 한 살아가는 일을 겪으면서 이제는 제 스스로도 알아차릴 나이는 벌써 지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6년이라는 결코 길지 않은 선생님의 삶이 그 많은 신문들의 그 흔한 부음소식 한 줄조차 없이 기억되지 않는 모습으로 남는 일은 참으로 원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 이 어찌 질곡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이 어찌 처절한 시대의 모순이라고 울먹이지 않을 수 없겠습니까.

한국의 현대 교육현장에서, 그리고 여전히 치유되지 못하고 갈등과 반목이 거듭되고 있는 사학의 온갖 모순과 오욕에 대해 기꺼이 온몸을 다 바치신 선생님의 열정은 어쩌면 차라리 세상과 어울리지 않은 순수함이었을까요.

자신들과 입장이 다르면 무조건 질시하는 짓에 그치지 않고 기어이 생채기를 내야 직성이 풀리는 살아남은 자들의 잔인함이 새삼 몸서리쳐지는데, 서러운 내 눈물은 선생님의 영정사진을 자꾸만 흐릿하게 합니다. 그런 상처들이 차곡차곡 쌓여 선생님의 넓고도 깊기만 한 속내에 암덩어리로 커가고 있을 때, 그 고통을 살아남아 있는 제자의 용렬함으로는 차마 알아차리지 못했음이 서럽기만 합니다.

선생님! 저를 제외한 많은 선생님의 제자들은 이제 선생님의 숭고한 뜻을 이어받아 교육현장에서 훌륭하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늘 생활에 찌들려 살면서도 올바른 사도(師道)의 길이 무엇인가에 대한 긴장을 늦추지 않는 제자들은 살아계실 때 선생님의 모습과 한결같은 닮은꼴입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이제 한 줌 재가 되어 높은 산이 아닌 이 세상 사람들과 가까운 동산에 누우셨고, 저는 선생님의 산과 사진을 추억하며 차마 저장된 번호를 지우지 못한 채 떨리는 손길로 스마트폰을 로그아웃합니다. 혹시라도 하늘에서 걸려 오는 전화를 기다리며 그리움을 가슴에 깊이 담는 일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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