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의 오류
인용의 오류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10.17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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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강대헌 <충북인터넷고 교사>

열두 명의 제자들이 따르고 있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제자들과 함께한 마지막 만찬 때, 그를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하게 될 제자는 그를 '주님(Lord)'이라고 불렀고, 그를 배반하여 돈 받고 넘겨 줄 제자는 '선생님(Teacher)'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날 밤에 그는 세 명의 제자들을 따로 불러 겟세마네라고 하는 곳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곳은 그가 늘 혼자 기도하던 한적한 곳이었습니다. 그가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머무르며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

그는 얼굴을 땅에 대고 쐴?려 기도했습니다. "이 고통의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당신이 원하시는 뜻대로 하십시오."

그는 와서 제자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고 있었습니다. 그는 한 제자에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너희는 한 시간도 나와 함께 깨어 있을 수 없느냐?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하여라.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구나!"

그는 다시 두 번째로 가서, 기도했습니다. "이 고통의 잔을 내가 반드시 마셔야 하는 것이라면, 당신의 뜻대로 해 주십시오."

그가 다시 와서 보니, 제자들이 여전히 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너무 졸려서 눈을 뜰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제자들을 그대로 두고 다시 가서, 하늘의 뜻대로만 하시라고 세 번째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아직도 잠자고 쉬고 있느냐? 보아라, 때가 이르렀다."

성경에 나오는 이 기사(記事)를 읽을 때마다,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동고동락했던 그가 죽음의 시간을 앞에 두고 절대고독(絶對孤獨)과 맞서 고군분투하고 있었음에도, 단 한 시간조차도 깨어 있지 못하고 잠들어 있는 제자들의 철없는 연약함이 남의 일만 같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보처럼 잠들어 있는 제자들에게 화를 내지 않고 안타까워하는 대목에선 그에 대한 경외감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구나(The spirit is willing, but the flesh is weak)!"

그렇습니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것이 인간의 육신적인 모습입니다. 그렇게 어쩔 수 없는 제자들의 모습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그는 불꽃처럼 타오르는 연민의 눈빛으로 제자들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인간은 약한 육신 때문에 마음의 뜻대로만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곤란을 겪게 마련입니다.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문제는 다른 경우에 생깁니다. 그가 제자들을 탓하지 않고 했던 '깊은 위로(a deep comfort)'의 그 말을 생각이 부족한 사람들이 '값싼 변명(a cheap excuse)'으로 사용해서 자신들이 처한 위태로운 상황을 둘러막을 때 말입니다.

처음부터 마음으로 소원하는 뜻도 없었든지, 아니면 그저 조금 열심을 품으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달려들었다가 낭패를 보게 되자 대뜸 그 말을 인용(引用)할 때 말입니다. "마음으로는 원했지만, 육신이 약하네요"라고요. 인용의 오류는 백해무익일 뿐입니다.

자꾸 습관처럼 약한 육신을 핑계 삼아 잠자고 쉬는 동안에, 피할 수 없는 그때는 오고야 마니 어쩌겠습니까. 우리, 끝까지 견디어내는 힘을 가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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