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익살꾼 정수동
천하의 익살꾼 정수동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8.25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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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의 에세이
김우영 <소설가>

오면 오고, 가면 가는 구름 같은 사람. 세속의 얽매임이 싫어 툴툴 털고 인생을 풍미하던 사람. 동쪽에서 잠을 자고 서쪽에서 밥을 먹었던 익살꾼 정수동.

그가 아침 해장술이 생각나서 청계천 수표동 다리 근처에 있는 친구 집에 갔다.

친구는 그를 좀 떨어진 소실 집으로 데리고 갔다. 잠시 후 술상이 나왔는데, 그 집의 황홀함에 비하여 너무나 초라한 밥상이었다.

콩나물과 깍두기 한 종지만이 뎅그라니 나왔다. 어이가 없어서 쳐다만 보고 앉아 있는데 술을 권하는 것이다.

"술상은 이래도 술맛은 좋다네, 어서 한잔 드시게!"

정수동이 손을 들어 술잔을 받아 보니 막걸리 잔이 너무 조그만 하였다.

술잔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정수동은 갑자기 훌쩍거리다가 급기야는 방바닥을 치며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친구가 웬일이냐고 의아해 묻자 정수동 왈,

"이 사람아 말 말게 내가 애통 안 하게 생겼나. 돌아가신 우리 형님 생각이 불현듯 나서 그러네. 자네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형님은 술을 자시다가 돌아가셨다네."

"아니 어떻게 그러셨나?"

"음, 꼭 오늘의 나처럼 친구네 집에 가서 술을 자시는데 술잔이 너무 작아서 그만 그 작은 놈이 목구멍에 홀랑 넘어가 버리고 말았지 무언가!"

하루는 정수동이 길을 지나다가 목이 말라 주막에 들렀으나 술값이 없어 난감했다.

그러나 천하의 비위꾼 정수동이 그냥 넘어갈리는 만무. 주모에게 외상술을 청하니 지난번 술값이 외상으로 있어서 안 된다며 거절을 했다.

정수동은 하는 수 없이 주막 마루에 앉아 있는데, 마당에 널어놓은 멧밥을 돼지가 와서 마구 퍼먹었다.

부엌에서 얼마 만에 주모가 나타나더니 눈이 휘둥그레지며 돼지를 내몰고는 정수동을 향해서 원망 섞인 말을 한다.

"원, 선달님도 아니 그래 돼지가 멧밥을 다 퍼먹도록 물끄러미 보고만 계셨단 말이요?"

그러자 정수동은 시침을 뚝 떼며 말한다.

"허허, 이 사람 나는 저 돼지가 맞돈 내고 먹는 줄 알았지 누가 외상으로 먹는 줄 알았어야지,"

"뭐 뭐예욧?"

하루는 정수동이 잔칫집에서 공짜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집으로 가다가 그 마을에서 행세깨나 하는 친구 집에 들렀다.

시원한 초여름날 대청에 모처럼 친구와 앉으니 또 슬슬 주기와 오기가 발동이 되는지라.

구두쇠인 친구를 구워삶아 기어이 술상을 차리게 했다.

저만치 여자 하인 하나가 거위 목을 끌어안고 어쩔 줄 모르며 당황해 하고 있었다.

정수동이 어인일이냐고 묻자 그 하인은 저 거위가 뾰족한 못을 삼켰다는 것이다.

저러다 죽을까 봐 토해내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정수동은 호방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술잔을 들고는 여자 하인을 향해서 말했다.

"허허허허! 얘 괜찮다 괜찮아. 수백 냥씩 도둑질하여 재물을 삼키고도 이렇게 떠억 버티고 있는 여기 주인도 있는데 까짓 그것 좀 삼킨다 하여 그 거위가 죽는 일은 없을 테니 안심을 하여라!"

그러자 앞의 친구가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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