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막거리에서 카페에 이르기까지
주막거리에서 카페에 이르기까지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6.24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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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의 에세이
김우영 <소설가>

주막은 나그네가 쉬어 가는 여인숙이자 훌륭한 술집. 그중 중남부권을 가로지르는 문경새재는 과거 보러 가는 선비들이 반드시 넘어야 하던 정한이 서린 곳이다.

그래서 새재 어귀에는 주막들이 즐비했는데 첫 관문인 주흘문을 지나야 겨우 충청도 괴산 고을로 들어간다.

그곳에 상푸실, 중푸실, 하푸실 등 주막이 있었다. 이 중 상푸실 주막이 늘 만원사례. 사람과 말이 워낙 붐비는 중에 양반 상놈의 신분 차이 사이에 끼다보니, 밥값이나 술값보다 정작 주인의 눈치 보기가 어려웠다.

서로 주막 안방에 들려고 하고 하인들끼리도 서로 모시는 세도가 집안을 나불대니 자연 백주대낮에 한 대접 술기운을 빈 멱살다짐이 끊이질 않았다. 물론 승부는 예나 지금이나 든든한 '백'으로 판가름.

양반에서 장돌뱅이까지 별의별 사람들이 다 모이던 주막이다 보니 날이 새기 무섭게 화제가 만발한다.

도망가던 과부가 참빗장수에게 붙들렸다는 둥, 신랑과 혼례를 치르고 시집으로 가던 꽃 같던 어린 신부가 산적에게 납치됐다는 둥, 상감께 바칠 공불이 하룻밤 새 쥐도 새도 모르게 증발했다는 둥 주막은 가히 에피소드의 산실이었다.

불쌍한 행상들을 울리는 폭력배들이 주막마다 설쳤다. 그럴 적마다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주막거리서 공공연히 벌어졌다.

그러나 주막거리는 당시 많은 행인들에게 풋풋한 사랑의 내음이나 아롱진 추억거리도 역시 듬뿍 제공했다.

묵은 김치를 샥│샥│ 썰어 넣고 비계 붙은 돼지고기 한 점 넣어서 푹 끓이던 냄새가 참으로 구수하다. 그러면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외친다.

"설설이 끓었고, 비지전골이요?"

시장기를 띤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러면 주모는 술동이를 이고 씨암탉걸음으로 아장이며 걸어와 한 대접씩 컬컬한 막걸리를 안긴다.

손님은 주로 가마꾼이나 인력거꾼, 등불을 켜 들고 다니는 등잡이도 약방의 감초처럼 한 자리를 한다. 어느새 날품팔이들도 우르르 몰린다.

그러던 주막 선술집이 차츰 없어지면서 생긴 게 바로 색주가(色酒家)나 내외(內外)술집이다.

색주가는 말 그대로 젊은 여인들이 실내로 손님을 끌어들여 술을 파는 곳이다. 내외술집은 행세하던 집 과부가 생계에 쪼들린 나머지 자기 집 건넛방을 치우고 넌지시 술을 팔던 곳이다.

내외술집은 일제 강점기에 당시 독립지사들이 일경의 눈을 피해 몰래 숨거나 망국한을 달래며 술을 마셨던 곳이기도 하다.

그 후 갓을 쓴 행인이 줄어가고 양복차림이 늘어가면서 생긴 게 바로 요정이다. 충무로의 본정이나 명동의 명치정 등은 술집으로뿐만 아니라 한 시대 역사서로 기록될 만큼 숱한 사람들이 들락거렸다. 또 그만큼 많은 사건과 일화를 간직해 왔다.

이러던 주막의 변천사가 오늘날에는 갖가지 카페나 룸살롱 또는 으리으리한 요정의 행태로 요란하다.

거리의 선술집이 호화찬란한 궁중 술집처럼 변모했으니, 앞으로 수십 년 아니 수백 년 후에는 또 어떤 행태의 '신식주막거리'가 생겨날지 두고 볼 일이다. 한잔을 들면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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