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의 소묘(素描)
어버이날의 소묘(素描)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10.05.06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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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一筆
한 달 전쯤 보도된 내용인데도 '이 시대의 가장들'이 아직까지 뼈속 깊이 새기는 기사가 하나 있다.

KBS 방송문화연구소가 전국의 성인 남녀 8천484명을 대상으로 결혼에 대한 인식조사를 실시했더니 기혼여성의 72%가 '다시 결혼한다면 지금의 남편과 안 하겠다'고 응답했다는 것이다. 반면에 남성은 46.9%만이 '지금의 배우자는 아니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여성이 남성보다 월등히 많은 이런 현상에 대해 물론 전문가들 나름대로의 진단이 내려지겠지만 어쨌든 남자들로선 몹시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우리의 일상에서 얼마든지 예측가능한 현상이다. 나이가 들면서 남녀가 가정, 특히 부부관계에 대해 갖는 인식은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남자가 감성적이라면 여자는 다분히 이지적이다. 남성은 의무와 책임감, 그리고 사회적 입지나 위상을 고민하는 반면, 여성은 실제(實際)와 실리를 따져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짙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젊어서야 서로 한눈에 반해 결혼했다고 해도 숱한 세월을 같이 살면서 지지고 볶고 하며 쓴맛 단맛을 다 본 처지라면 여성은 당연히 남성보다도 더 현재의 배우자에게 식상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것을 가장 현실적으로 입증하는 것은 남자들의 심리적 변화다. 남자들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점점 더 가정과 배우자에게 기대려는 속성을 내재시킨다. 젊어서는 빼어난 능력과 재주를 무기삼아 밖으로만 나돌았더라도 나이가 들면 다시 집구석을 기웃거리는 것이다.

이럴 때 새롭게 각인되는 것은 다름아닌 평생(?) 반려자인 배우자의 존재다. 실제로 가장이 부인의 실체와 가치(?)를 뼈저리게 느끼기 시작하는 시기는 인생을 살 만큼 살았다고 할 수 있는 40, 50대 장년층이 되고부터다. 이때쯤 되면 남자는 각종 사회적 여파로 힘이 떨어지는가 하면, 노년에 대한 고민도 심각해진다.

이처럼 남자들이 뒤늦은 자각을 깨우치게 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가정에 대한 의무감이 앞서기 때문이다. 모든 이가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가족을 별 탈 없이 건사시키고 지켜야겠다는 책임감이 나이가 들면서 불쑥 불쑥 더 엄습하게 되고 그때마다 자책감도 커지는 것이다. 그러니 옆에 배우자라도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겠는가.

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것,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부인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돌려 놓지는 못한다. 괴리감은 늘 존재할 수밖에 없고 이를 잘못 건드리면 결국 파국까지도 부를 수 있다.

이 시기엔 덩달아 자녀들까지 엄마편이 되는 바람에 남자들은 이래저래 서럽기만 하다. 그래서 '늙어 시집살이'라는 말은 어느덧 가장들에게 더 어울리게 됐다.

요즘 가장들의 각종 사석에서 우스갯소리로 가장 인기를 끄는 것이 하나 있다. 이른바 노숙자 시리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어느날 서울역에 집에서 쫓겨난 노숙자 가장들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돌아가면서 얘기하는 그 사연들이 하나같이 기구하기만 하다. 먼저 20대는 아침밥을 먹고나서 후식까지 달라고 했다가 부인에게 쫓겨났고, 30대는 삼시세끼 모두 챙겨달라고 했다가 쫓겨났다고 한다. 40대는 저녁을 먹은 후에 밤참을 달랐다고 해서 쫓겨났고, 50대는 대문을 나서는 부인에게 "어디 가냐"고 물었다가 쫓겨났단다. 60대는 "내 퇴직금 어디에 썼냐"고 부인에게 물었다가 역시 집 밖으로 내몰려 노숙자로 전락했고, 70대는 집 안에 있으면서도 하루종일 말 안 한다고 쫓겨났는가 하면 80대는 (밤새 죽지 않고) 아침에 눈떴다고 부인에게 쫓겨났단다.

내일은 어버이날, 어차피 이날은 당초의 어머니날에서 남자들의 박탈감을 배려해 이름만 바뀐 게 아니겠는가. 이날 하루만이라도 가장들의 축 처진 어깨를 생각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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