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하지 않은 적(賊)
의도하지 않은 적(賊)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4.18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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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영일 본보 대기자

최근 에릭 슈미츠 구글 최고경영자(CEO)가 자사의 웹오피스 서비스인 '구글독스'의 새 버전을 선보이는 행사에 참석한 정보기술 매니저들에게 사업을 하면서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자꾸 적(賊)이 생긴다고 말했다고 한다.

슈미츠의 이런 발언은 경쟁 상대인 애플과 불편한 관계는 물론 중국시장에서 서비스와 관련해 중국당국의 규제를 받고 있다는 생각과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의 반독점조사 등이 복합된 것이란 게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구글과 애플은 '세퀴이아 캐피탈'이란 투자회사가 키운 회사로 담당자도 같았다고 한다. 또한 슈미츠는 구글의 대표이사로서 FTC의 곱지않은 시선 속에서도 애플이사회에 참여할 정도였다. 사업확장 과정에서 미묘한 경쟁을 벌였지만 이들 회사가 적대관계로 변한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해 9월 슈미츠가 애플사의 이사직을 사퇴하면서라고 한다.

구글은 넥서스원을 출시하여 먼저 나온 아이폰과 스마트폰경쟁을 벌였고, 애플이 관심을 갖고 있던 광고회사(Admob)를 인수하여 상대가 또 다른 광고회사(Quattro wireless)를 인수토록 유발해 모바일광고시장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여기까지는 기업들이 통상적으로 벌이는 선의의 경쟁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얼마전 애플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가 구글의 기업모토를 힐난하여 감정싸움으로 전개되는 양상을 띠는 가운데 '의도하지 않은 적'이라는 표현이 구글측에서 나왔다.

육아교육지침서에서 '아이에게 엄마의 의도를 들키지 말라'는 구절을 본 적이 있다. 이는 엄마가 자기가 생각한 대로 아이에게 무언가 하게 하여 교육효과를 올리려 할 때 아이가 이를 더 잘 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엄마의 의도를 파악하는 순간 아이는 이에 대해 거부할 테고 엄마에게 반항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럴 때 엄마는 무척 난감하고 두려움마저 느낄 것이다.

백과사전에서는 의도(意圖)를 적당한 기회가 오면 어떤 목표 달성을 위해서 특정의 행동을 실행하려고 하는 결의라고 설명한다. 쉽게 얘기하면 무엇을 하고자 하는 생각이나 계획이 사전적 해석이다. 그렇지만 같은 말이라도 쓰임새에 따라 뉘앙스가 사뭇 다르게 들리는 경우가 있다. 육아교육지침서에서 의도는 아이에게 교육적인 긍정적 효과를 거두려는 좋은 의미에서 쓰였지만 슈미츠의 발언에서는 은연중에 나쁜 의미를 내포하면서 자기행동에 대한 변명을 한 것 같은 인상이다.

구글 최고경영자의 '의도하지 않은 적'이라는 표현은 경쟁관계에서는 원하던 원치 않던 적이 만들어진다는 평범한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저의가 깔린 말로도 들린다. 더 나아가서는 동종업계에서 선의의 경쟁을 하기보다는 독점적 지위를 획득하거나 경쟁자를 쓰러뜨리려는 기도를 하다가 들켜서 발뺌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요즘 지역에서는 지방선거와 관련해 각 정당의 공천자들이 발표되고 있다. 같은 당에서 공천경쟁을 벌였던 정치인 중에서 공천탈락으로 자기의 목표를 이룰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공천의 불공정성'을 내세우며 탈당선언을 하는 일이 나타나고 있다.

낙천자는 불공정 경선을 문제삼고 공천자는 입을 닫고 있거나 경쟁은 공정했고 자신의 떳떳함을 내세운다. 목표를 이루려는 의도에서 택한 행동이 동지였던 공천자와 선의의 경쟁관계를 떠나 적대관계로 발전한다.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적을 만들었고 적이 만들어진 것이다.

힐난과 이를 피해가려는 듯한 양태의 구글과 애플의 경쟁과 지방선거공천 과정에서 나타나는 탈당선언 양상이 중첩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권력과 부를 누리면서도 명예를 지키고 적을 만들지 않으려면 덕(德)을 쌓아야 한다'는 글귀가 새삼스럽게 의미를 더하며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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