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하늘과 맞닿은 땅(1)
티벳-하늘과 맞닿은 땅(1)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4.08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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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범의 지구촌풍경
떠난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낯선 곳에서의 잠자리는 불편하고 처음 접한 것과의 조우(遭遇)는 어색합니다. 그러나 아늑한 것을 버리고 불편한 것을 찾아 떠납니다. 내가 마주치는 것들이 내 영혼의 눈을 떠주게 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사람과 호수, 그리고 전설처럼 선한 동물이 산다는 티벳이 마음에 들어옵니다. 자료를 모으며 떠날 준비를 합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미리 공부하는 시간은 즐겁습니다. 아직 몸은 가지 않았지만 마음은 벌써 티벳의 곳곳을 누비고 있습니다. 떠나기 전의 즐거움입니다. 영어가 불통인 나라지만 그까짓 언어야 한갓 경계에 불과한 것.

지금은 빼앗긴 땅 '티벳' - 땅 욕심 많은 대국이 침략을 한 뒤 그 점령을 확고히 하기 위해 모든 전문가들이 불가능하다고 했던 '칭짱열차'의 길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 열차를 타기 위해 이국의 풍취가 풍기는 대합실에서 이국 정취를 구경합니다. 대합실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오골거립니다. 보따리 장사를 하기 위해 왔다 가는 듯한 티벳인들은 시골에서 대도시로 온 어리둥절함과 수줍음이 그대로 보입니다.

또 한 무리는 티벳의 상권을 휘어잡고 있다는 '한족'의 거만한 모습들이 사성조(四聲調)로 시끄럽게 떠들고 있습니다. 거만한 나라에 나라를 빼앗긴 티벳인의 모습이 슬프게 작습니다. 평화롭게 사는 사람은 짓밟아도 된다는 약육강식의 힘 앞에서 티벳인들은 아주 작은 모양새로 웅크리고 있습니다.

'일찍 일어나는 새는 벌레를 잡지만 일찍 일어나는 벌레는 새에게 잡아 먹힌다'는 힘의 법칙이 세상을 지배하는 한 우리는 결코 유토피아에 다다를 수 없다는 절망을 깨우칩니다.

'칭짱 열차'는 밤늦어 출발을 합니다. 밤을 뚫고 달린 기차는 날이 밝자 황톳빛 산과 차갑고 푸른 강물이 펼쳐진 곳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 멀리 산이 서 있습니다. 산에는 나무도 없고 풀도 없습니다. 그래도 그걸 산이라고 부릅니다. 그 당당한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범부(凡夫)인 우리는 살면서 정(情)이라는 나무도 키우고 연(緣)이라는 풀도 키웁니다. 우리네 삶은 정(情)과 연(緣)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고 뜻한 바대로 삶을 살지 못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렇게 풀도 나무도 없이 고고히 서 있는 황토산의 당당함이 너무나 매혹적입니다. 나도 저렇게 살 수 있을까 정(情)과 연(緣)을 끊고 세상과 맞짱을 뜨면서 '외롭고 높고 당당하게' 살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 옆으로 눈 녹은 강물도 흐릅니다. 차갑기는 얼음과 같고 석회가 섞여 물고기도 살지 못합니다. 그래도 그것을 일러 강이라고 합니다. 더불어 사는 중생은 없지만 당당히 흐르는 강물을 보니 마음이 울컥합니다. 강이라고 어찌 외롭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그 외로움을 제 물소리로 달래며 저 혼자 흐릅니다. 물고기도 새도 없는 고독을 저 혼자 만년을 흘러내립니다. 저런 당당함이 부럽습니다. 이박 삼일을 가야하는 열차는 이제 겨우 하룻밤을 왔습니다. 차창 밖에는 같은 풍경이 계속 펼쳐지고 저 멀리 만년을 녹지 않았다는 눈 덮인 산봉우리가 보입니다. 이제 저 만년설 봉우리가 남은 일정을 같이하게 될 것입니다. 당당한 것들 사이로 외로운 내가 스쳐 갑니다.

외로운 나는 가고 외롭지 않은 당당함은 앞으로도 꼿꼿하게 서 있을 것입니다.

◈ 윤승범 시인 프로필

·1996년 지용 신인문학상 수상

·2006년부터 칼럼니스트로 활동

·베트남 한인회지 칼럼게재 중

·인터넷 한겨레 코리안 네트워크 칼럼 게재 중

·한국 작가회의 회원

·충주 칠금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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