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남이섬에서
그때 그 시절 남이섬에서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1.28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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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의 에세이
김우영 <소설가>
오래 전의 일이다. 전대미문의 술 마시기 대회가 문화 예술인을 대상으로 경기도 가평의 남이섬에서 열렸다.

주간한국에서 주최를 했던 술 마시기 대회였다. 그간 주조회사 등에서 무슨 무슨 행사의 하나로 짤막하게 행사 직전이나 직후에 더러 덤으로 술 겨루기 대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상이 문화 예술인들이었고, 주조회사로부터 맥주를 한 트럭씩 무료로 지원을 받아 대대적으로 벌인 행사로는 초유의 일이었다. 대회 중에 생길 불의의 사고를 대비해 응급차까지 동원이 되었다. 행사의 모양새가 뭇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술 마시기 대회의 경기 종목은 누가 일정량의 맥주를 빨리 마시느냐와 누가 가장 많이 마시느냐였다. 또 눈을 가리고 맥주를 마시고선 회사의 상표를 맞히는 세가지로 겨루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지금은 작고하신 시인 조병화, 정비석, 윤병로씨를 비롯하여 평론가 김우종, 신동한씨와 여류 문인으로는 손소희, 김남조, 구혜영, 홍윤숙씨 등과 화가, 건축가 방송 언론 분야 등 많은 사람들이 참석을 했다. 이들의 면모를 보면 당대의 내로라하는 깔끔한 선비요, 장안의 주당임을 자타가 공인하는 분들로 인생의 멋과 맛을 아는 풍류객들이었다.

장소는 널찍한 남이섬의 푸르른 풀밭에 탁자를 쭈욱 놓고 술 마시기 대회를 열었다. 모두들 빨리 마시고 많이 마시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란 가히 가관이어서 참석한 많은 사람들이 배꼽을 잡고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진행하는 순간순간의 코믹터치와 뒤뚱뒤뚱거리며 큼직한 몸매로 재치있게 마셔대는 풍류객들의 모습에는 삶의 여유가 있었다. 파안대소하는 모습 속에는 천진한 보통 사람의 모습 그대로였다.

남자와 여자로 구분해 경기를 벌였다. 남자팀의 우승은 당시 굵직한 톤과 미남으로 인기를 끌었던 방송인 임택근씨였다. 여자팀에서는 평소 주량이 높은 손소희씨가 우승하리라 짐작을 했지만 결과는 예상을 뒤엎었다. 김남조 시인이 1위, 2위는 홍윤숙 시인이 차지했다.

이날 행사의 상품으로는 맥주가 푸짐하게 나왔다. 뒤풀이의 여흥을 즐기면서 남이섬 풀밭에서 해 가는 줄 몰랐다. 별다른 큰 사고는 없었지만 건축가인 김중업씨가 몸에 약간 이상이 생겨 들것에 실려 의료팀의 진료를 받았고, 홍윤숙 시인이 술에 약하여 돌아오는 배 안과 차 안에서 고생한 정도였다.

이런저런 해프닝의 연출로 얼룩지던 남이섬에서의 술 마시기 대회는 끝이 났다. 그런데 정작 이 행사는 다음날 큰 화젯거리를 불러 일으켰다. 방송국에서 이색 대회를 녹화 취재해서 다음날 방영을 했다. 그때가 한창 무더운 여름철이었다. 일부 지방에서는 심한 가뭄으로 논밭이 갈라지고 식수 문제까지 심화되어 농민들이 한숨을 짓던 때였다. 이런 판국에 문화 예술을 한다는 사람들이 남이섬 풀밭에서 술 마시기 대회를 한답시고 맥주를 잔디에 뿌려대며 한바탕 즐기는 모습이 TV화면을 통하여 나갔으니 비난의 소리가 곳곳에서 빗발쳤다.

주최측인 주간한국에서는 이색 술 마시기 대회의 시선을 집중시키고자 기획을 했을 것이다. 주간지 표지에다 술 마시는 쾌쾌한 모습의 사진까지 담아 전국에 배포했으니 주최 측, 방송사, 주조회사는 말할 것도 없고, 이 행사에 참석한 이른바 장안의 명사들 또한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하여튼 그날의 행사는 해프닝과 파문이 일다가 점차 세월과 함께 몇 분은 이미 이 세상을 떠나가고 , 추억의 한 페이지로 아롱지며 사라져갔다. 아!

인생은 짧다. 그러나 술잔을 비울 시간은 아직 충분하다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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