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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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12.08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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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련
반숭례 <수필가>

노을이 빨간 볼을 붉히고 있는 저녁나절 거미 한 마리가 공중 여행을 떠납니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거미줄을 찾아 마당을 돌다 빨래 줄에 숨었다가 담장까지 꽁무니에서 실을 뽑아내고 있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어느 곳에서든 줄을 치는 거미는 형제들과 헤어져서 혼자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 합니다.

거미에게도 여러 가지 천적이 있지만 그래도 열심히 집을 짓습니다. 둥근 멍석을 펴놓은 것처럼 촘촘하게 지은 집 보기에도 단단합니다. 그 옆을 지나가는 잠자리 말벌 나비 매미가 걸려듭니다. 걸려든 곤충들이 달아나려 발버둥 칠 때마다 끈적끈적한 거미줄이 그들의 몸에 달라붙어 빠져 나가지 못합니다. 그때 무당거미가 어디서 나타났는지 잽싼 동작으로 걸려든 먹이 감을 꽁무니에서 나오는 줄로 둘둘 말아 한 가운데로 운반을 합니다. 자연의 법칙에는 날마다 먹느냐 먹히느냐의 싸움이 계속 됩니다.

친자매처럼 지내던 영애가 있었습니다. 스무 살이 지나면서 소식이 뜸하더니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영애 소식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내 나이 쉰이 넘어서야 미국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간접적으로 들었습니다. 슈퍼마켓을 하고 있는데 흑인들의 폭동으로 흑인이 쏜 총에 남편을 잃었다는 슬픈 소식까지 접하게 되어 커다란 눈망울에서 쏟아지는 눈물을 어떻게 주체했을까 생각을 하니 가슴이 메었습니다. 위로해 주고 싶어 몇날 며칠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뜻밖에 초등동창들이 모이는 카페에서 미국에 살고 있는 친구를 만나게 되었는데 영애와 가까이에서 살고 있다는 반가운 이야길 들었습니다.

영애와 나는 목이 메어 말을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한동안 말을 잊지 못하다가 영애가 "언니 보고 싶다 보고 싶어 죽겠어" 나도 그만큼이나 그립고 보고 싶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갑자기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처하게 되면 말문이 막히나 봅니다.

어린시절 영애를 처음 만나게 된 것은 기차역 둥근 나무 의자에 앉아서 울던 모습부터입니다. 처음 보는 아이였지만 왠지 보호해 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생겼었습니다. 길을 잃은 아이라면 우리 집으로 데리고 가려고 지켜보았는데 기차가 막 떠나고 그 아이 뒤를 따라가 봤더니 읍내에 살고 있었습니다. 형제자매들도 많은 집 막내딸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천주교에서 만났는데 어찌나 반가운지 나도 모르게 그 아이 뒤에 가서 꼭 끌어안았던 기억을 잊지 못합니다.

거미줄에 걸려든 잠자리가 빠져 나가려 푸드덕거리는 것을 보고 구해 주려고 작대기를 찾는 동안 꼼짝 못하게 동여 놓고 자취를 감추어버렸습니다. 무당거미 짓입니다. 단 일이 분 사이인데 재빠른 동작의 강자 앞에 난 두려움을 새삼 느껴봅니다.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물고기들이 비늘을 털어놓은 듯한 구름이 떼지어 모여드는 하늘에 어스름이 깔리니 그리움이 깊어만 갑니다. 외로운 타국에서 남매와 함께 홀로서기를 하며 탄탄한 자리 매김의 집을 짓고 있는 영애가 오늘따라 무척이나 그립습니다.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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