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장실 인분 투척 사건
조합장실 인분 투척 사건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11.08 18: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스크의 주장
한인섭 <사회부장>
농협 조합장실에 인분을 뿌렸다니.

흔치 않은 인분 투척사건을 접한 것은 지난 5일 오전이었다.

청원군의 한 농협 조합원들이 조합장실을 찾아가 인분을 투척했다는 얘기였다. 같은 날 오후에는 또 다른 조합원이 찾아와 조합장실 집기류를 부쉈다는 것이었다. 우스개 말로 '어떤 열혈남아(熱血男兒)들()이 그런 일을 했나' 싶었다. 조합 내부의 운영문제가 불거졌거나, 선거 후유증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이 엉뚱한 사건은 원인 역시 엉뚱했다. 취업청탁을 들어주지 않은 조합장에 대한 원망이 표출된 것이었다.

동네에서 형님 동생하던 이들은 지난 선거에서 조합장을 밀어 당선을 시켰는데 유조차 운전사 채용 청탁을 들어주지 않아 지난 4일 각각 조합장실에 들어가 인분을 뿌리고, 집기류를 부쉈던 것이다.

왜 그랬나 들어봤더니 "조합장만 되면 사람이 변해 구린내 나는 조합장실을 깨끗이 청소시키려 했다"는 얘기다. 집기를 부순 조합원은 "(아들 취업)약속을 지키지않아 그랬다. 처벌받을 각오가 돼 있다"는 대답이었다.

격앙돼 경찰 신고라도 했을 법한 조합장은 의외로 담담했다. 그는 "조합원들의 불만도 들어주고, 청탁도 들어줘야 한다. 고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일을 저지른 조합원들이나 당한 조합장이나 요즘 흔한 말로 모두 '쿨' 했다.

조합장 선거를 치르고 나면 선거법위반이다, 금품제공이다 끊임없이 문제가 터지곤 하는 게 단위농협들의 현주이다. 하지만 이런 류의 청탁을 둘러싼 인분 투척사건은 처음 듣는 얘기였지만, 속이 뒤틀릴 법했을 당사자의 대응은 조합원 눈치보기에 가까웠다. '선거'가 용감한() 조합원을 만들었고, 대범한 조합장을 만든 셈이다.

시골이더라도 일단 당선되면 1억원 안팎의 연봉에다 예산 집행권, 사업관련 이권 행사 등 권한이 집중된다. 소규모 농협의 경우 조합원 장악이 쉬워 보이는 탓인지 후보난립 양상은 더하다.

지난달 30일 끝난 제천시 금성농협조합장 선거의 경우 모두 7명의 후보가 나섰다. 조합원 1014명에 불과한 미니 농협이다. 이런 곳일수록 조합원 장악이 쉬워보이는 탓인지 후보가 난립한다. 조합원 85%, 849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조합장은 전체 조합원의 19%인 202표로 당선될 수 있었다. 금성농협 얘기는 아니지만, 사정이 이렇다면 불법선거 유혹은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07년 통계를 찾아 봤더니 전국 116개 농협에서 치러진 조합장 선거에서 83건(72%)이 불법선거로 고발이나, 수사의뢰, 선관위 경고 등 조치가 취해졌다. 2006년에는 501곳에서 316건(63%)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충북에서도 전체 후보자가 금품살포 등으로 수사기관에 고발된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조합원 수에 비해 막강한 권한 탓에 불법을 저지르더라도 당선돼야 한다는 유혹이 클 수밖에 없고, 공직선거법에 비해 처벌은 약하다. 당선되면 농협운영보다 재선에 눈독을 들일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다.

인분 투척 사건은 청탁 내용이나 수습 방식은 서로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하는 시골에서 있을 법한 일이라고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조합장 선거가 지닌 속성을 잘 드러낸 일이라고 하는 게 맞을 듯싶다.

농협 개혁방안으로 거론되고 있는 일선 조합장 비상임 전환과 전문경영인제 도입 방안은 그래서 설득력 있어 보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