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소령 김영수
해군 소령 김영수
  • 이재경 기자
  • 승인 2009.10.16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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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부국장<천안>
TV를 보면서 내내 그가 불쌍해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난 13일 MBC PD수첩에 방영된 해군 소령 김영수씨. 나랏돈이 헛되이 쓰이는 걸 막기 위해 몸부림쳤던 그가 직장(軍) 내에서는 도저히 해결이 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에 결국 최악의 방법(군에서 보기에)을 택했다. TV에 나와 내부 비리를 폭로한 것이다.

TV를 통해 드러난 군대의 썩은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투명성 확보와 예산 절감을 위해 도입된 공개경쟁 입찰제는 썩은 군인들의 배를 부르게 하기 위해 아예 묵살됐다.
1억원어치 같은 물품을 구매하면서 이를 특정 업체에 밀어주기 위해 열개로 쪼개 수의계약을 했다. 업체는 들러리를 세워 수주를 독식했다. 이 과정에서 검은 돈이 군 내부로 흘러들어 간 정황도 포착됐다. 구매 라인에 포진된 한 군인의 계좌에 무려 8억원 규모의 거액이 드나들었다.

김 소령은 이를 묵과하는 게 죄를 짓는 거로 생각하고 용기를 내 군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공허한 메아리였다. 수차례나, 최후엔 국가 청렴위에도 비위사실을 알렸지만 연루된 이들 중, 단 한명도 처벌을 받지 않았다. 국가 청렴위의 의뢰를 받은 국방부 조사단은 수사를 통해 해군에서 입찰 부정으로 9억4000만원의 국고를 축낸 것을 확인했다. 관련자 16명을 징계하도록 해군에 이첩했지만 해군은 '증명할 수 없는 관행'이란 이유로 아무도 처벌하지 않고 수사를 종결했다.

사무용품을 특정 업체에 시세보다 두배나 비싼 돈을 주고 산 행위를 '긴급 소요 상황'에서의 어쩔 수 없는 업무였다고 인정했다. 전쟁 발발 상황과 같은 급박한 지경이었기 때문에, 입찰을 부칠 경황이 없었다고 인정한 것이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국감장에서 이 문제가 들춰져 도마에 올랐다. 추궁하는 국회의원에게 해군참모총장이 한 답변이 가관이다.

정옥근 총장은 "지금 군인으로서의 신분을 망각하고 자기 일신을 위해서 일하는 책임없는 사람의 말"이라며 김 소령을 맹렬히 비난했다. 해군 조직의 일신을 위해 용기를 낸 내부 고발자를 자기 이익만을 위해 조직을 등진 배신자로 낙인 찍은 것이다.

조직의 최고 정점에 있는 참모총장의 말이 이러니 그야말로 김 소령은 파리 목숨이고, 이미 목 잘린 시체다. 그래도 '삼성특검'의 내부 고발자 김용철씨는 변호사 자격증이나 갖고 있었지, 이거 군대서 소령으로 불명예 제대하면 뭐하나.

몇해 전 국가청렴위가 공직 사회의 내부 고발자가 사건 후 어떤 대접을 받는가를 조사한 적이 있다. 무려 67%가 인사조치나 징계 등의 보복을 받았다. 공조직의 부패를 들춰내 애국을 한 이들이 되려 일자리를 빼앗기고 한직으로 내몰리는 상황이 매년 반복됐다.

지금 우리 법에 명시된 내부 고발자 보호를 위한 규정은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부패방지법에 곁다리로 신분 보호와 형사상 책임의 감면 등을 규정했지만 '할 수 있다'는 수준이지, '해야 한다'는 강제 규정은 사실상 아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민주당이 실질적인 내부 고발자 보호법인 '공익침해 신고행위 신고자 보호법' 제정에 나섰다. 다행이다. 차제에 김 소령 같은 이들이 신분보장을 뛰어넘어 승진도 하고, 상도 받는 규정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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