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 직지원정대원 영결식 이후…
실종 직지원정대원 영결식 이후…
  • 한인섭 기자
  • 승인 2009.10.12 2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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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한인섭 <사회부장>
히말라야 히운출리봉 북벽 신루트 개척에 나섰다 실종된 직지원정대 민준영, 박종성 대원 영결식이 유족의 오열 속에 지난 11일 치러졌다. 영결식이 열린 충북체육회관은 전국에서 방문한 산악인들과 두 산 사나이들을 아끼던 지인들이 찾아 헌화와 애도가 이어졌다. 히말라야 설산에 잠든 산악인들에 대한 영결식이었던 탓인지 보통의 장례식과는 조금 달랐다. 영결식장은 발들여 놓을 틈이 없을 정도로 붐볐지만, 고요할 정도로 애잔함이 가득했다. 히운출리 북벽 하단부를 출발해 지난달 25일 오전 8시15분쯤 히운출리 북벽루트 관측지점 대원들과 마지막 교신을 한 이후 16일만에 열린 두 대원 영결식은 그랬다.

10일동안 수색작업을 벌인 끝에 충북산악연맹에 '실종 보고' 한 후 귀국한 직지원정대원들도 모습을 보였다. 실종 이후 해발 4200m 베이스캠프와 실종 추정 지점인 해발 5400m를 오가며 두 대원들을 찾느라 헤맸던 10일간의 처절한 몸부림과 4일간의 카라반(물자수송·행군)으로 몸이 상할 대로 상해 '파김치' 이상의 상태였다. 영결식의 직지원정대원들은 목숨을 잃은 동료를 두고 온 슬픔과 자책감, 두 대원 유족에 대한 죄면스러움에 갇혀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었다. 전날 가진 귀국 보고 형식의 기자회견에서는 "물의를 빚어 죄송하다"는 말로 심경을 표현했다. 두 대원을 잃어 영결식에 헌화를 해야했던 자책감을 헤아릴 수 있는 대목이다.

직지원정대의 귀국은 애초 일정대로 진행됐지만, 순탄치는 않았다. 4차례에 걸친 헬기수색과 셀파 동원에 소요된 추가 비용이 3000만원에 달했던 탓이다. 대원들의 발이 묶일 상황도 예상할 수 있었지만, 충북산악연맹과 청주시가 발빠르게 대처해 잘 매듭됐다. 당초 1000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했던 청주시가 2000만원을 추가 지원한 것은 원정대나 충북산악연맹의 짐을 한결 가볍게 했다. 충북산악연맹이 모금운동과 같은 자구책까지 검토하던 상황이었지만, 막연하기만 했던 일이었다.

영결식이 끝나고 추가 비용도 급한 불은 끈 셈이다. 하지만 직지원정대가 갚아야 할 유무형의 빚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유족들에 대한 심적 부담이 그럴 것이고, 연맹과 지역사회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박연수 대장 말대로 '하나 하나 갚아야 할 일'이다.

이 대목에서 직지원정대 구성과 이번 원정이 지닌 의미를 새삼 환기하고 싶다. 현존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 직지(直指)의 세계화와 가치 재조명이었다. 직지의 창조 정신과 히말라야 히운출리 북벽 신루트(6441m)에 대한 도전 정신은 이번 등정의 축이었다. 지난해 6월 원정대는 히말라야 해발 6253m 무명봉 등정에 성공했다. 파키스탄 정부가 무명봉을 '직지 피크'로 명명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히운출리 북벽 등정 실패와 두 대원 실종(사망)은 원정대에 많은 시련을 안겨, 또 한 번의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저런 뒷말이 양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버거운 코스를 왜 택했냐'는 것이나, 없는 살림에 무리한 일을 벌였다는 식의 냉소적 시각을 말하는 것이다. 일이 잘됐으면 더 박수칠 사안들인데 말이다. 일반인들도 잘 알 정도의 충북 산악인들이 많지만, 따지자면 직지원정대는 그야말로 '토종'들이다. 많은 성과를 거뒀고, 앞으로도 마찬가지 역할을 해야 한다. 히운출리 등정 실패와 대원 실종에 갇힐 게 아니라 지역사회가 이들에게 더 큰 길을 열어 주는 역할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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