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치에 맞아야 할 사람은 우리다
망치에 맞아야 할 사람은 우리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09.10.06 2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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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권혁두 부국장 <영동·옥천·보은>
철창 속에 갇힌 한 남자의 머리를 누군가 망치로 내리치고 있다. 나영이가 그림을 통해 표출한 분노다. 이 남자를 감옥에 가두는 것만으로는 위로받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나영이는 상상조차 어려운 엽기적 성범죄에 의해 희생된 11살 여아다. 범행 과정에서 장기 80%가 훼손되는 바람에 항문이 완전 폐쇄돼 평생 대소변을 받아낼 보조기구를 옆구리에 차고 살아야 한다. 여성의 생리적 기능도 사실상 포기해야 한다. 앞으로의 이 아이의 삶을 섣불리 예단할 수는 없다. 우리는 모두 나영이가 시련을 극복하고 누구보다 보람있는 인생을 엮어가기를 기원한다. 그러나 이 아이가 성인으로 자라면서 음지에 몸을 감추고 기구한 운명을 한탄하며 고통스럽게 살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가 나영이를 겪어보지 않고도 그녀가 살인보다 더한 재앙을 당했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이유다. 그러나 사회는 그녀의 분노에 응답하지 않았다.

법원은 가해자를 감형했고, 검찰은 항소를 포기했다. 검찰은 지난 2006년 한 아동 성폭행범을 기소해 1심에서 5년형을 선고받자 곧장 항소했다. 고법은 죄질이 나빠 5년은 부족하다며 7년으로 형을 올려 선고했다. 이런 검찰이 이번에는 구형한 무기징역이 12년으로 대폭 감형됐고, 피고인이 불복해 항소했는데도 맞상소를 포기했다. 이 결과 2심과 대법원은 1심의 형량을 높일 수 없었다. 형사소송법은 검사가 상소하지 않으면 상급심이 원심보다 높은 형량을 선고할 수 없도록 하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적극적으로 법이 허용한 구제 방안을 동원해 중형을 모면했지만, 검찰은 피해자가 위탁한 권리를 방기한 셈이 됐다.

법원은 무기징역이 구형된 가해자가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며 감형을 베풀었다. 통상 법원은 피고인이 범행을 순순히 자백하고 죄를 뉘우치는 경우 선처한다. 그러나 이번 가해자는 경찰 조사에서 끈질기게 범행을 부인했고,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정상 참작의 여지가 없었던 그를 구제한 것은 그가 범행 전에 마셨다는 술이었다. 법원은 그가 만취상태에서 범행했고, 그 상태를 '심신미약'으로 본 것이다.

심신미약의 애매한 범주에 대해서도 공감하기 어렵거니와 범행 후 증거를 없애기 위해 그가 벌인 잔인하고 치밀한 행위들도 정말 만취상태에 있었는지 의심하게 한다. 재판부가 적극적으로 감형을 위한 단서를 찾았던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들게한다.

아동 성폭행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끔찍한 사건이 터지면 여론이 폭발하고 정치권이 호들갑을 떨곤 했지만 아직까지 변변한 대책 한 건 나온 것이 없고 범행만 늘어날 뿐이다. 이유야 여럿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어린이들은 약자이고, 약자는 외면해 버리는 비겁한 사회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어린이는 스스로를 대변하고 호소하고 세력화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정치권이 진지하게 관심을 갖는 유권자도 아니다. 매사에서 성인들에 의해 철저하게 대리, 대행되는 집단이다. 그래서 사회적 보호망이 더욱 절실하지만 이들의 인격은 수시로 잊혀지고 경시당한다. 더욱이 그 어린이가 나영이 부모처럼 돈도 백도 없는, 법적으로 생계를 지원받는 영세민 자녀라면 소외의 정도는 배가된다.

경북 포항에 사는 12살짜리 소녀가 동네 주민 5~6명에게 지속적으로 당한 끔찍한 사례가 다시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지체장애가 있는 이 소녀는 같은 장애인인 어머니와 산다. 이 아이의 담임교사는 "보호시설에서 나와 다시 성폭력에 노출된 제자를 위해 서울까지 오가며 각계에 보호대책을 호소했지만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고 절규했다.

이러고도 우리는 내년에 G20 정상회담을 유치했다며 선진국을 자처한다. 나영이의 망치에 맞아야 할 사람은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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