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했지만 투혼 새긴 히말라야 직지원정대
실패했지만 투혼 새긴 히말라야 직지원정대
  • 한인섭 기자
  • 승인 2009.10.04 2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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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한인섭 <사회부장>
히말라야 직지원정대 민준영 등반대장과 박종성 대원이 히운출리 신루트(6441m) 공격 베이스캠프와 연락두절된 지 5일이면 11일째이다. 1%의 생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색작업에 나섰지만, 지난 3일을 끝으로 종료됐다. 지난달 25일 오후 7시(현지시간) 연락두절된 이후 세차례에 걸친 헬기수색과 전문 클라이밍 셀파들을 동원한 현지 수색작업을 벌였지만 등반대원들을 찾지 못했다.

히말라야 히운출리 북벽 해발 5400m 지점에 마지막 발자국을 남긴 대원 2명은 아무런 조난 흔적없이 사라졌다. 전문 산악인들은 이 점을 들어 생존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색작업이 잘되길 기대했다. 실종 대원들이 국내 정상급 산악인이라는 점에서 예정된 루트를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하산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가졌으나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다.

실종 대원 가족들과 베이스캠프에 남아있던 직지원정대 대원들에게 이번 추석연휴는 참으로 감내하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연휴가 시작됐던 지난 2일 충북산악연맹과 민준영 등반대장, 박종성 대원 가족은 현지로 출발해 상황을 살펴볼 계획이었다. 그러나 네팔 카두만두에서 베이스캠프까지 이동하려면 일주일가량 걸려 보류했다. 베이스캠프만 해도 해발 4200m에 달해 고소증 등 부담 탓에 접근이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베이스캠프에 남아있는 대원들의 사정도 말할 것 없다. 박연수 원정대장과 김동화·박수환·윤해원 대원, 손근선 충청타임즈 기자, 5명이 그들이다.

히말라야 고산에서 동료를 잃은 슬픔은 그 자체에 머물지 않아 금세 공포와 두려움으로 다가오곤 한다는 대원들의 얘길 들을 수 있었다. 헬기와 현지 셀파 수색에 실낱같은 희망을 건 기원과 절규는 통곡이 되곤했다. 현지 대원들은 이미 눈물이 말랐다고 여러차례 전했다. 사기와 체력이 극히 저하돼 모두 소화불량, 메스꺼움, 어지럼증 등 육체적 고통도 심했다. 대원들이 돌아올 것이라는 작은 기대감으로 견디곤 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히말라야 고봉을 향한 산악인들의 도전은 자연을 향한 인간의 한계를 한 걸음씩 개척했다는 점에서 일반인들에게 늘 희망과 용기를 줬다. 동시에 좌절감과 한계를 새삼 인식시키곤 했다. 목숨을 건 사투와 정상 등정 소식은 산악인만 느끼는 희열이 아니었다. 반대의 경우라도 정상을 향한 산악인의 거친 호흡은 감동을 주기 충분했다. 인간 한계를 오가며 경험하는 도전과 성취, 좌절과 슬픔은 인간사가 그 속에 녹아 있는 듯해 그 자체로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직지원정대도 마찬가지이다.

이번에 택한 길은 네팔 룸비니주 포카라지역 히운출리 북벽 신루트였다. 8000m급 최고봉은 아니다. 하지만 지난 84년 일본 원정대가 처녀 등정에 실패한 이후 산악인들의 발길이 닿지않아 신개척 루트로 도전해 볼만한 곳이었다.

암벽이 불안정해 난코스로 알려진 곳이어서 현지 셀파나 포터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한마디로 강한 모험정신을 가진 산악인들이 개척해 볼만한 곳이었다. 원정대는 등정에 성공하면 이곳을 현존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 '직지(直指)루트'로 명명할 계획이었다. 인류 최고 발명품의 하나로 간주되는 금속활자 '직지'가 지닌 문명 개척 정신과 히말라야 신루트 도전이라는 의미를 담았던 것이다.

직지원정대는 5일이면 베이스캠프를 철수한다. 히말라야 히운출리 북벽 직지 신루트 개척은 안타깝게 실패했다. 그러나 직지원정대원들과 등반에 나섰던 민준영, 박종성 대원의 투혼은 히말라야에 고스란히 새겨졌을 것이다. 이들을 설산에 남기고 곧 돌아올 원정대원들과 실종 대원 가족들에 대한 따뜻한 격려와 후원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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