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와 네이밍
신종플루와 네이밍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9.08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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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의 위기시대 위기관리론
이재은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
이제는 꽤 오래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지난 1990년대 초 중동지역에서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탈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34개국의 다국적군이 1991년 1월17일부터 2월 말까지 이라크를 상대로 쿠웨이트와 이라크 지역에서 전쟁을 수행했다.

즉 쿠웨이트의 원유 물량 과잉공급을 빌미로 당시 이라크 대통령이었던 사담 후세인이 1990년 8월2일에 쿠웨이트를 침공해 이라크의 19번째 속주로 삼았던데 대해 미국이 대이라크전에 대비해 43만명의 미군을 포함한 34개국 다국적군 68만명이 함께 페르시아만(Persian Gulf) 일대에 집결해 전쟁을 수행하였던 것이다.

당시 전쟁의 이름을 붙이는 과정에서 중동지역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이슬람교인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하여 걸프전(Gulf War)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반발이나 전쟁 반대에 대비한 것이었다.

특정한 용어의 사용은 그 내용 못지않게 중요하다. 한마디의 용어가 동종의 유사한 제품들을 통칭할 수도 있고 또는 한 사람의 이름으로 한 시대의 역사적 사건이나 흐름을 파악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특정한 제품 및 서비스를 식별하는데 사용되는 명칭이나 기호, 디자인을 총칭하는 브랜드의 중요성이 더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상품이나 서비스, 회사나 점포, 캠페인이나 특정 판매기간 등에 이름을 붙이는 네이밍(naming) 전문기업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네이밍은 제품이나 서비스의 차별화에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광고의 전제 조건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광고를 전제로 하는 네이밍에서는 읽기 쉽고, 듣기 쉽고, 쓰기 쉽고, 말하기 쉽고, 외우기 쉬워야 한다는 것이 전제가 된다. 그러기에 부정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네이밍이 가져오는 부정적 효과 또한 큰 것이 사실이다.

때로는 위기관리에서도 네이밍이 논란의 대상이 되곤 하였다. 처음으로 태풍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한 호주의 기상 예보관들은 자신이 싫어하는 정치인의 이름을 붙이곤 하였다. 예컨대 자신이 싫어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의 이름을 사용하여 태풍 예보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2차 대전 이후에는 미국의 공군과 해군에서 공식적으로 태풍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는데, 이때 예보관들은 자신의 아내나 애인의 이름을 사용하였다.

이 전통에 따라 1978년까지는 태풍 이름이 여성이었다가 여성의 이미지 훼손 등을 이유로 남자와 여자 이름을 번갈아 사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0년 이후에는 아시아태풍위원회에서 아시아 각국 국민들의 태풍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태풍 경계를 강화하기 위해서 태풍 이름을 서양식에서 아시아 지역 14개국의 고유한 이름으로 변경하여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6월11일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대유행기를 선포한 신종 플루의 경우에도 최초 이름은 돼지 독감, 돼지 인플루엔자, 돼지 플루라고 이름을 불렀으나 돼지와 관련이 있다는 증거가 없어 신종 인플루엔자A(H1N1)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사람, 돼지,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이 혼합되어 나타난 새로운 형태의 바이러스를 명명한 것이다.

요즘 언론에서는 신종 플루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아마도 이번 기회에 또 다른 신종 인플루엔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담아 신종 플루로 통칭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제라도 신종 플루 A 또는 신종 인플루엔자 A라고 정확하게 명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신종 바이러스나 변종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사용하는 신종 플루라는 용어 덕분()에 앞으로는 새로운 인플루엔자가 발생해도 지금의 신종 플루와 혼동되거나 대처 방법 등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기우에서 제안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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