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은어
술과 은어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9.03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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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의 에세이
김우영 <소설가>
팽팽한 일상적인 생활속에 부유하고 다니는 은어(隱語)들이 있어 우리의 삶은 미소로 느슨하게 풀어져 살 만한 재미를 느끼게 한다. 해학과 기지가 번뜩이는 은어는 그 시대의 저편에 있는 거울이요,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늘 이어지는 삶을 직관적으로 보기보다는 유연하게 회화적으로 표현하여 상대의 마음을 열어 웃음과 진실로 끌어내고자 하는 게 은어의 역할일 것이다.

이러한 삶이 활력소이자 미소의 꽃인 은어는, 술을 좋아하는 주객들에겐 특별한 유기적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일상의 삶에 대한 회의나 갈등을 느껴 찾는 주객들에겐 주석의 대화가 더없는 위안의 장(場)이다. 이곳에서 주객들은 은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우리들만의 소중한 아성으로 구축해 삶을 향유 한다. 어쩌면 인생을 풍류하며 살려는 우리의 멋과 은어는 불가분의 관계가 아닌가 싶다. 주석에서 만들어져 서슴없이 불리는 은어들이 있다.

주객들은 보통 술집을 인생강의실이라고 한다. 막걸리집을 고전강의실, 맥주나 양주집은 서양강의실, 소주집은 서민사회학강의실이라고 부른다.

칸델라 불빛을 흘리며 주머니가 비교적 가벼운 주객들을 손?求?포장마차는 참새집, 연인과 찾는 무드있는 경양식집을 칼질집, 소주나 대포를 먹자며 오고 가며 가볍게 들러 마시는 술집을 목로집, 술상을 두들기며 신나게 노는 집을 니나노집, 아늑하게 분위기 있는 집에서 여인과 마시는 술집을 방석집 등으로 부른다.

술에 붙인 이름은 소주를 수소탄, 막걸리를 원자탄, 맥주를 중성자탄, 양주를 유도탄이라 하며, 칵테일 종류로는 막걸리에다 사이다를 탄 술을 막사이사이, 소주에다 콜라를 탄 술을 소크라테스라고 한다.

술을 마시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놓치도 털지도 카 하지도 않고 마시는 술을 노털카술이라 하고, 초반에 그날치 주량을 다 마셔버리는 부류를 초전박살형, 초반엔 얌전하게 꽁무니 빼다가 끝판에 열을 올리는 후전박살형, 시종일관 술만 마셔대는 전천후요격기형이 있다.

술잔에도 이름이 여러가지다. 자신의 술잔을 금방 비우고 상대방한테 빨리 돌리는 술잔을 번개술잔, 술잔을 받아놓고 오랫동안 먹지 않고 고개만 숙이는 제사술잔, 술잔이 넘치도록 따라주어도 먹지 않고 있는 우는 술잔을 곡주(哭酒), 술잔을 두 잔 이상 받아놓고 먹는 잔을 쌍잔, 술을 주는 대로 넙죽넙죽 잘 받아먹는 술잔은 두꺼비술잔, 큰 잔에 술을 가득 부어 벌컥벌컥 마시는 술잔은 고래술잔이라고 한다.

여러사람이 술을 마시면서 시작이나 종반에 브라보를 많이 한다. 대개는 그냥 브라보를 외치든가, ~위하여, ~만세를 외치는 사람도 있다. 최근엔 개나발(개인과 나의 발전을 위하여), 조나발(조국과 나의 발전을 위하여), 쨍그랑을 위하여 하는 말을 자주 쓴다.

술을 자신의 주량 이상으로 많이 마셔 토하는 경우도 가끔 있는데, 이것을 일종반납(군대에서 식량을 내놓는다는 뜻), 파전 붙이기, 싸전 본다, 입가에 찌개 고드름 등으로 불린다.

술 좌석의 차수에도 처음에 먹는 좌석은 맛들이기(시동걸기), 전면돌기, 들어붓기, 재놓기, 술이 사람을 먹기 등으로 구분한다.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형태도 여러 가지가 있다. 마음이 합해서 먹는 술은 합환주요, 떨어지는 술은 이별주라. 혼자 먹는 술은 고독 술, 둘이 먹는 술은 환담 술, 여러 사람이 먹는 술은 뜨네기 술 등 헤아릴 수 없다. 은어가 주는 별주에 마음 합한 합환주가 생각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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