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不惑)
불혹(不惑)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8.26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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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천
이영창 <수필가>
전문병원은 같은 병자들이다. 한 병실 환자와 보호자들은 더욱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가까운 대화로 오간다. 내 옆 병상 보호자인 부인에게 어쩌다 나이를 비교하다가, 몇 살이 되었느냐고 묻게 되었다. 그녀는 "불혹이요." 라고 대답했다. 그러며 말꼬리를 내린다. 얼굴이 탱탱하니 마흔 살 넘었다고 대답하면 좀 여유로울 텐데, 멋쩍은 기색이다.

그래 그 나이면 만고풍상 격은 것이고, 무슨 일이건 알 거 알 만치 안다는 표정도 같다. 글의 뜻으로 따지자면 불혹(不惑)은 유혹(誘惑)의 반대말이 된다. 그렇다면 유혹이란 무엇일까 남의 마음을 현혹시키고 꾀이다 라는 사전적 의미가 통한다.

한편 미혹이라는 말이 있다. 성년이 되고부터 30대를 가리키는 말이 될 듯 하다. 정신을 바로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며, 마음도 바로 세우지 못하고, 혼자서는 마음 가는 곳에 잘 홀리는 시절이다. 서른아홉까지의 나이를 말하는 것이리라. 여기서 한 해가 가 새해가 오면 불혹이다. 살 만치 살아봐서 잘 유혹되지 않는다는 뜻에서 불혹이란 말이 태어 났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의미는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다.

여성들은 마흔살부터 10년간이 폐경기라고 한다. 40이전에 오는 폐경도 문제가 크지만 이 사이에 폐경이 오지 않는 여자에게도 신체적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폐경이 오면 여성의 아름다운 윤기도 사라지고 점차 남성화 되어 가며, 이곳저곳 아파지는 곳도 많아지고 마음도 우울하게 변한다고 한다. 경도야 말로 여성 고유의 아름다움을 지켜주는 윤활유이자 대들보인 셈이다.

그래서인가. 여자들은 불혹(40대)이란 나이를 예사롭게 생각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왕성해 가는 성격처럼 거칠어지고 있지만, 속으로는 힘차게 솟았던 꼬리를 내리는지 모른다. 반면 남자들은 불혹이다 뭐다를 모르고 지나게 되므로 이를 따지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나도 마흔 살을 넘으면서 이(齒)에 이상이 오기 시작했고, 몸의 유연성이 떨어지며 전처럼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 못했다. 나의 육체도 내리막길로 접어들었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불혹은 남성에게도 알게 모르게 살며시 오는 것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 가볍게 달리기운동을 시작했다. 운동만이 폐세되어 가는 육체를 유지하리라 생각해서였다. 그러면서부터 얼굴은 나이를 먹어가도 몸과 마음만은 생기를 찾는 듯했다. 직장생활도 활기를 되찾고 머리도 맑아져 가정생활도 여유로워져 갔다.

지금은 달리기운동을 그만둔 지도 오래지만 나이 먹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질병이야 어찌할까, 내 삶에 불혹은 있을 수 없다. 세상에 유혹되지 않고 산다면 죽은 몸이나 무엇이 다르랴.

백발 되어, 사랑방에서 밥 먹고 벽만 보고 있다가 얼굴에 똥 찍어 바르나, 솔밭에서 잔디이불 덮고 하늘만 보라보나 무엇이 다르랴. 좋은 것을 보고 좋아하지 않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감탄치 않으며, 불의를 보고 정의 편에 서지 않는다면 살아가는 의미가 없다.

세상 사람들은 약자의 편이지만 역사는 강자의 편이다. 그래도 역사는 믿는다. 그러나 다 믿지는 못한다. 40대여! 불혹이 무엇인가 유혹에 푹 빠져 멋지게 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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