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해님의 역사
바람과 해님의 역사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8.20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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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결국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지루한 장마와 염천이 넘나드는 8월, 여러 차례 위태로운 소식이 심상치 않더니 끝내 그렇게 서둘러 가시고 말았습니다.

유난히도 햇살이 따가웠던 5월, 경복궁 앞뜰에서 목 놓아 설움을 토해내던 당신의 모습이 걱정스럽더니, 결국 그 우려는 현실이 되어 우리를 못내 황망하게 합니다.

하얗기도 하고, 붉은 빛을 띠기도 하는 인동초의 무성한 꽃잎이 하나 둘 스러지는 한여름.

광복을 말하고, (북한에)억류됐던 미국 국적의 여기자 2명이 전직 대통령에 의해 극적으로 석방되는 미국의 모습이 부러웠던 계절은 어쩌면 희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는 민간기업인의 역할로 인해 비슷한 처지에 있던 우리 국민이 풀려나는 모습을 보며 탄식하면서도 아직은 잡을 수 있는 가녀린 실끈이나마 남아 있음에 안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날 나는 서울에 있었습니다.

방학을 맞은 늦둥이와 창경궁과 창덕궁, 비원을 오가며 찬란한 우리 역사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 나는 얼마 전 바꾼 휴대전화에 내장된 구연동화를 동행한 3살배기 조카에게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동화 콘텐츠는 '바람과 해님'이었습니다. 나그네의 옷을 벗기려던 바람의 심술은 오히려 더욱 옷깃을 단단히 부여잡게 하는 반면, 해님은 부드럽고 따뜻한 햇살로 옷을 벗게 만드는 반전의 대목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라는 긴급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날 찬란한 조선왕조 5백년의 역사를 돌아보며, 나는 '사자가 자신만의 역사가를 구하기 전까지, 사냥이야기는 언제나 사냥꾼에 대한 찬양으로 가득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던 까닭은 무엇인지 여전히 갈피를 잡을 수 없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올 한해 두 분의 전직 대통령과 이별을 하는 황망함에 몸서리치는 역사를 경험하는 현재진행형에 살고 있습니다. 한 번의 국민장과 또 한 번의 국장을 치르면서 우리는 화해와 용서를 말하는 사람들과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화해와 용서라는 단어의 의미망 안에는 반드시 상대성이 있음을 어찌 모르는 것일까요.

도대체 누가 누구를 적대시했으며,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시비를 걸었고, 누가 누구에게 힘을 빼놓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은 아닌지요.

그런 일방적인 질시와 비난마저도 일일이 대응하면서 서로 용서하며 화해하자는 식의 대응만이 전직대통령의 유일한 관용이라면 차라리 그런 상징성은 의미가 없는 건 아닌지요.

어떤 이는 대한민국 헌정 사상 유일하게 천수를 다하신 서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동교동과 상도동이 뱀 허물 묀? 갈등을 사라지게 하고 빈소에서, 또 영결식장에서 화기애애한 옛날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기를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토록 인심 좋게 옛일을 추억하기에는 우리는 너무 민주주의에 익숙해 있고, 그래서 조금도 불편하지 않은 채 말 그대로 '승자의 역사'에 길들어 있는 건 아닌지도 궁금합니다.

다만 그런 갈등과 대립과 반목의 역사를 질타할 수 있는 상징적 힘조차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라는 생각으로 명복을 빌게 됩니다.

이쯤에서 차라리 발사가 연기된 '나로호'를 타고 날아올라 우리에게 남은 희망의 안간힘이라도 불어 넣어 주시는 전직대통령이 되셨으면 싶습니다.

그런 희망쯤은 있어야 '통일'과 '민주'가 한때 집권당시의 철학이 아닌 '어린왕자'와 같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가슴에 담아두는 국민으로 남아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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