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근초란 이름의 상추보쌈이여
은근초란 이름의 상추보쌈이여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7.30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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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의 에세이
김우영 <소설가>
요즈음은 비닐하우스 재배로 인하여 언제 어느 때이고 상추쌈을 먹을 수 있지만 예전에는 여름 한철에만 잠시 먹을 수 있었다.

여름날 정오에 온 식구가 둥그런 두레상을 마루에 펴고 앉아 금방 채전에서 따온 상춧잎을 우물물로 씻어 그야말로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먹어 치웠었다. 여름볕이 따사롭게 토방에 드리우고 씨암탉이 담 밑을 기웃거리는 날, 배고프던 차에 밥 한 사발을 단숨에 먹은지라 졸음이 스르르 와 허리띠 풀어 배꼽 드러내 놓고 낮잠 한숨을 자노라면 여름 해는 짧아 서산녘을 붉게 물들이곤 하던 그때 그 시절.

상추는 국화과 일년초로 광범위하게 재배되고 꽃은 6월쯤 피는데, 상춧잎 특유의 풋풋하고도 부드러운 맛 때문에 예전이나 지금이나 상추쌈은 식탁에서 인기이다. 상춧잎뿐 아니라 깻잎쌈, 피마자쌈, 호박잎쌈, 배추쌈, 김치쌈 등의 소채류 쌈은 예부터 서민의 밥상을 풍성하게 해주었지만 그중에서도 으뜸은 역시 상추쌈이다. 뭐랄까, 음식물을 남에게 보이지 않고 상춧잎이란 소채류로 보기 좋게 싸서 먹은 우리 조상의 식탁 문화라고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쌈을 싸서 먹는 모습이 양반의 품위를 떨어뜨린다고 여겼던지 예절을 가르치는 책에 품위 있게 상추쌈을 먹는 방법이 예시되어 있다.

이덕무라는 사람이 쓴 '사소절(士小節)'에 보면 상추를 싸 먹을 때 직접 손을 대선 안 되고 먼저 수저로 밥을 떠 밥그릇 위에 가로놓고 젓가락으로 상추 두세 잎을 들어 밥을 싼 다음 입에 넣고서 그 다음 된장을 떠먹어야 한다고 기술되어 있다. 당시 고려에 이 풍습이 멀리 원나라에까지 전해져 고려풍의 하나로 크게 유행했다고 한다.

위와 같은 방법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당시의 양반 사회에 흡수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상추쌈이란 손바닥을 사용하여 밥과 된장 등을 올려놓고 먹어야 제 맛이 나는 것이 아닐까. 그땐 예의범절을 중시하던 때라 흰 수염 긴 할아버지가 며느리나 자손들 앞에서 팔을 걷어붙이고 상추쌈을 싸 먹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안 먹자니 맛이 그립고, 먹자니 양반 체면에 그렇고 하여 여간 곤혹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예전에 집에서 상추를 심을 때, 텃밭이 아닌 채전이나 뒤켠에 심고는 싸리나 짚으로 울타리를 쳐 아낙네들이 암암리에 가꾸었다. 상추를 많이 심게 되면 그 집 안방마님의 음욕과 성욕이 많아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상추는 몰래 그 집 안주인의 치마폭에서 큰다 하여 '은근초'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웠다.

특히 굵직굵직한 고추밭 이랑 사이에 심은 상추일수록 약이 잘 올라 최고로 평가되며 남편의 밥상 위에 알뜰하게 챙겨져 남자의 성욕을 키운다는 유감 주술법이 있다. 이런 며느리를 욕할 때 예전에는 '고추밭 상추 가리는 년'이라고 했다. 남편을 위하는 척하며 실은 자신의 음욕을 채운다는 얘기다.

하긴 서양의 철학자 로렌스는 '인간과 인간의 결합은 육체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고, 동양의 성인 임어당도 '인간의 행복은 대개가 관능적인 행복에 있다'고 그의 저서에서 기술한 바 있다.

상춧잎을 펴고 그 위에 밥 한 술과 된장을 얹고는 입을 찢어지게 벌려 쏙 집어 넣고는 양 볼때기 옴실거리며 먹는 은근초의 그 맛이란 어쨌든 참을 수 없는 유혹인 것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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