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과 꼬마친구
아이스크림과 꼬마친구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7.20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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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소천 홍현옥 <시인>
소천 홍현옥 <시인>

오랜만에 햇볕이 따갑다.

하늘이 구멍이라도 난 듯 며칠 동안 비가 내려서 눅눅함 때문에 환기를 하려고 베란다 창문을 열고 주방 창문을 여는데 무엇인가 스치는 소리와 함께 가슴이 이상하다.

손으로 만져보니 아뿔싸. 뭔가 닿는 촉감이 심상치 않아 손을 떼지도 못하고 내려다 봤더니 매미다.

장맛비를 피하느라 아파트 창가에 있었는지 날개가 마르지도 않은 것이 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발버둥을 친다. 그 모습이 애처롭다 못해 아파온다. 급하게 옷을 챙겨입고 아파트 마당에 있는 화단으로 가서 가냘픈 몸 다칠세라 가만히 떼어 앵두나무 가지 위에 올려놓았다. 꼼지락 꼼지락 자리를 잡는가 싶더니 날갯짓을 몇 번 하고는 후루륵 날아가 버린다.

순간 휑하니 마음이 괜스레 허전해지더니 다행이구나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 섭섭한 마음이 든다.

날아간 매미를 보니 딸아이가 괜스레 보고 싶어진다. 강아지도 좋아하고 잠자리, 매미 살아 있는 동물이나 곤충이면 무척 좋아하고 보살피는 아이. 남편이 파리 한 마리도 잡지 않고 손사래로 쫓아 버리는 걸 보고 자란 탓인지 개미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귀하게 여기는 아이다. 엄마가 아이스크림 좋아한다고 외출했다 돌아 올 때면 손에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 꼭 들려져 있다.

돌아가신 시아버님 병간호 하느라 힘들어 할 때 다른 아이들 같으면 냄새 난다고 할아버지 방에도 안 들어 갔을 텐데 기저귀도 마다치 않고 갈아 드리고 옷도 갈아 입혀 드리고 손수 밥도 먹여 드리며 종알종알 말동무 해주던 딸. 어려운 친구가 있으면 집에 데려와 재우고 밥도 챙겨 먹이고 차비까지 줘서 보내는 아이. 할아버지 돌아가셨다고 전화했더니 서울에서 청주터미널까지 버스를 타고 내려오면서 엉엉 울고 장례식장에 온 손님들까지도 다 울렸던 딸아이를 보면서 나는 늘 아이스크림 같다고 생각했다. 황홀한 사랑의 향기와 같은 아이스크림 아내 조세핀에게 바치기 위해 새벽마다 알프스의 눈을 마차에 가득 실어 보냈었다고 하는 나폴레옹의 감동적인 사랑 그리고 약혼녀 마르다에게 매월 빨간 장미 한 송이와 900통의 러브레터를 보냈다는 프로이트의 정열적인 사랑 이야기도 생각이 난다. 인생이 아이스크림처럼 언제나 달콤할 순 없지만 나의 삶과 사랑이 단맛 잃은 설탕은 아니었을까. 짠맛 잃은 소금은 아니었을까. 꿀처럼 빨아들일 수 있는 단맛을 가슴 가득 맛볼 수 있는 짠맛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았을까. 망각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사람들은 세상이 살기 어렵다고 이기적이고 각박하다고 말을 하지만 우리 스스로 아이스크림 같은 사랑을 포기한채 나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마음으로 남을 탓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같은 아파트에 사는 3살 된 꼬마 친구가 하나 있다. 그 아이는 엄마 아빠 발음도 아직 분명치가 않다. 그 아이를 보면 세상 모든 걱정이 없어진 듯하다. 언젠가 인사를 안 하기에 "이모한테 인사해야지"했더니 고개만 까딱한다. 인사하는 걸 모르고 있었다. 길 한쪽에 세워놓고는 두 손을 배꼽 위에 올려놓고 정중하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따라 해보라고 했다. 어린아이에게는 무리였을 것이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그다음부터 그 아이는 나를 만나면 얼른 두 손을 배꼽 위에 갔다 놓고는 허리를 굽혀서 인사를 한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예쁘고 대견한지 나는 아이스크림으로 인사에 답례를 하곤 해서 아이스크림 값이 제법 들어간다. 아이스크림 값이 좀 들어가면 대수이겠는가. 해맑은 그 아이를 보면 더 없이 행복한 것을.

고운 날갯짓 하며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을 매미. 독일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서 내게는 더 없이 든든했던 딸. 잠시 프랑스에 있는 친구도 만나고 루브르박물관에도 잠시 들르고, 공부했던 독일까지 들러서 좀 긴 일정으로 떠난 딸이 오늘은 더 생각나고 보고 싶다. 불쑥 예고도 없이 "엄마, 아이스크림 드세요" 하며 환하게 현관문으로 들어설 것 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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