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함께 즐기는 여유로움
자연과 함께 즐기는 여유로움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6.10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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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천
이규정 <소설가>
   내가 부부동반의 모임에 참석하는 것은 어쩌다 한 번이다. 주야로 근무하는 직장생활에 또한 섣부른 소설을 쓰겠다고 주저앉는 시간이 많아서다. 아내가 군소리 없이 혼자서 참석하다가도 가끔은 생과부라는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이번에는 야유회를 간다며 불참하면 제명하겠다는 친구들의 엄포에 기겁을 하고 뒤따라 나섰다.

야유회를 하겠다고 쫓아가는 곳은 한적한 시골의 냇가였다. 냇가에 주저앉았더니 서늘한 바람에서 풋풋한 풀 향기가 가득했다. 풀숲에서 고개를 빼쭉 내밀고 살랑거리는 들꽃들이 제법 아름답다. 맑은 하늘에 흘러가는 조각구름들이 또한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아래쪽 냇가에는 제법 많은 철새들이 기웃거렸다. 냇물에서 꼬리를 흔들며 술래잡기를 하는 물고기들의 여유로움이 정겹게 느껴졌다.

부부동반으로 참석인원이 20명에 가깝다. 풀숲에 둘러앉아 먹는 음식은 진수성찬이 아니더라도 꿀맛이다. 어디서나 감초처럼 빼놓지 못하는 것이 소주다.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떠들썩하게 주고받는 소주잔에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누구나 당연하다는 듯이 마시는 소주에 나는 기겁을 한다. 두서너 잔에도 아랫배를 움켜쥐고 화장실에 쫓아가는 체질이기 때문이다

어디서나 소주 인심은 후하기도 하다. 막무가내로 마시라는 소주 대신 자판기 커피를 뽑아먹게 현금으로 달랬더니 어림없단다. 한 잔을 겨우 받아 삼키고는 도망치듯이 냇둑으로 올라섰더니 제법 자란 고추와 감자밭이다. 고추밭에서 고추순의 곁가지를 잘라내는 아저씨의 이마에 땀방울이 흘렀다. 마음이 비단결처럼 고운 친구아내가 쫓아가서 붙잡아오더니 소주잔에 삼겹살의 안주를 입 안에 넣어준다. 인심이 후덕한 아저씨는 나물로 묻혀 먹으라며 고추밭에서 잘라낸 고추순의 곁가지를 한 아름이나 안겨주었다.

감자밭에는 활짝 핀 자줏빛의 감자 꽃이 손?溝資?산들거렸다. 감자(甘藷)는 가지과의 다년생식물로 세계에서 네 번째로 생산되는 곡물이다. 예전에 보릿고개와 감잣고개를 넘기던 시절에는 감자가 한여름의 양식이었다. 요즘에도 감자조림, 감자샐러드, 감자볶음, 감자튀김, 감자탕으로 심심찮게 우리들의 식탁에 올라앉는 곡물이 감자다.

감자 꽃의 유혹에 이끌려가는 감자밭에서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는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영글지도 않은 감자서리에 풋보리를 구워먹었다. 손바닥으로 움켜잡는 가재는 물론 개구리의 넓적다리를 구워먹기도 했다. 찔레나무의 새순을 잘라먹다가 땅벌에게 쏘이는 것은 물론 물고기를 잡아먹던 시절에서 애틋한 추억들이 또렷하게 스쳐갔다.

감자밭에서 돌아오니 떠들썩한 이야기에 키득거리는 웃음소리는 여전하다. 소설을 쓴다고 특별대접을 하겠다며 친구부인이 커피를 불쑥 내밀었다. 나는 멋쩍게 받아드는 커피를 마시면서도 떠들썩한 이야기에 단편소설의 소재를 떠올리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어설픈 내 소설을 읽어주고 격려하는 그들에게 그것만으로도 특별대접을 받는 것이다.

시간이 언제 흘러갔는지 어둑해서야 라면봉지를 잡아 뜯는다. 저녁까지 먹겠다고 라면국물에 찬밥을 말아먹어도 꿀맛이다. 맑은 공기마시면서 정신이 맑아졌는지 그동안 막혀서 고뇌하던 소설의 흐름이 그려졌다. 나로서는 오랜만에 자연과 함께 즐기는 여유로움에 뜻있는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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