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 구사능력 통해 본 인간 노무현
논리 구사능력 통해 본 인간 노무현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6.03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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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읽는 세상이야기
김귀룡<충북대 철학과교수>
   노무현 전직 대통령이 서거하였다. 참으로 비극적인 일이다. 한마디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심정이다. 나는 노무현을 만난 적이 없다. 대학원 재학 시절 5공 청문회 중계방송에서 처음으로 그를 보았다. 상고학력인 그의 논리구사 능력은 탁월하였다.

그의 논리 구사 방식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그의 논리는 짧지만 명쾌하고, 알아듣기 쉽다. 머릿속에 어려운 개념이 많으면 말이 복잡하고 어려워지게 마련이다. 그는 어려운 단어를 쓰지 않는다. 쉬운 단어를 효과적으로 연결시키는 데 능통하다. 대중들에게 호소력이 있을 수밖에 없다.

단순하고 명쾌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애매모호한 방식으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법이 없다. 당시 모호한 수사를 동원하여 구렁이 담 넘어 가듯 국면을 회피하려던 증인들은 노무현 의원에게 호되게 당했고 그래서 국민들은 후련해 했다.

둘째, 청문회에서 그는 자신의 전제를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입장이 아니라 상대의 이야기나 입장으로부터 출발해서 상대 스스로 문제점을 인정하게 한다.

자신의 전제를 상대가 받아들여야 상대의 잘못이 인정된다면 그 전제를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속수무책이다. 상대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고 그로부터 논리를 구사하였기에 그의 비판은 효과적일 수밖에 없다. 그는 상대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야만 효율적으로 비판할 수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었다.

셋째, 그의 논리는 현실감이 있다. 대학교육을 받게 되면 추상적인 개념에 익숙해지고 원론적인 원칙들에 매이기 쉽다. 추상개념과 원리들을 동원하는 논리는 상황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와는 달리 당시 노무현 의원은 상황에 적합한 논리를 구사하였으며, 그 대표적인 사례가 국제상사 해체과정에 관한 청문이었다.

원론적으로는 부채비율이 300%였던 국제상사의 해체는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해체가 당연하다는 것을 입증하고자 하는 상대방 의원이 사용한 어법이다. 노무현 의원은 이렇게 묻는다. "부채 비율이 300%면 높은 거지요. 그런데 그 당시 다른 대기업의 부채 비율은 얼마였던가요. 500% 넘는 기업이 많고 심지어는 900% 되는 곳도 몇 군데 있지요. 그러면 그런 기업들부터 해체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왜 국제상사만 해체되어야 하는 거지요" 원칙은 맞지만 당시의 현실상황을 고려하면 부당한 처우를 당했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이런 방식으로 그는 상황에 딱 들어맞는 현실감 있는 논리를 구사한다.

넷째, 그의 논리 배후에는 정의감에 투철한 인간적인 정리가 깔려 있었다.

그는 청문회장에서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의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던 전두환, 장세동, 정주영 등을 몰아세우면서 부당한 처우를 당했던 사람들의 입장을 생각하여 종종 눈시울을 붉혔다. 원래 논리란 칼같이 냉정한 성정을 갖고 있어야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그는 냉혈한으로서가 아니라 아픈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리고 동조할 수 있는 따스한 심성으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의 논리는 살아 있을 수 있었다.

그가 구사하는 논리를 듣고 있다보면 그의 사람됨을 막연하게 짐작할 수 있다. 논리적으로 설득하거나 해명하는 사람은 권위로 사람을 압도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권위주의적일 수 없다. 명쾌하게 생각하는 만큼 지저분할 수 없는 사람이고, 상황에 적합한 말법을 지니고 있기에 현학적이지 않고 소탈하며, 엄정한 논리구사능력 배후에 인간적인 정리가 있기에 천성적으로 따스한 사람일 수밖에 없으며, 정의감이 있기에 원칙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면 참 아까운 사람을 잃었다는 생각이 든다. 일과성 안타까움에 그치지 않아야 할 텐데 걱정이다.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게 최선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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