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부사관, 가난한 장교 (下)
부자 부사관, 가난한 장교 (下)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6.01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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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오좌진 <주성대 국방정책연구소장 예비역 육군 준장>
   하사로 임관하면 군 간부로 신분을 보장받고 9급 공무원에 준하는 급여 및 수당을 받고 2년 후 중사로 진급하면 보수가 배 가까이 뛰어 안정된 결혼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군 숙소와 면세품 구매권한을 부여받고 군 휴양시설인 호텔이나 콘도를 사용할 수 있다.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도 부여된다.

주성대학도 인근지역 부대 부사관들을 위해 학·군 협력결연(MOU)을 통해 등록금 감면 등 각종혜택을 주고 있다. 명예스럽게 20년간 복무하고 전역하면 연금도 받을 수 있어 노후생활도 안정된다. 물질적 복지도 그렇지만 군내·외의 위상과 명예에 대한 자부심으로 젊은 인재들이 선호하는 직업이다.

필자가 1960년대 후반 보병 제7사단 포병대대 전포대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하루 종일 훈련으로 지친 병사들에게 피엑스(PX)에서 몇 차례 막걸리로 회식시키거나 생활비를 제하고 나면 언제나 봉급은 마이너스 봉투만 남았다. 봉급날 이튿날부터 외상 아니면 포대 행정부사관에게 돈을 빌리기 시작했던 이런 생활은 결혼 전까지 마찬가지였다. 즉 나는 가난한 장교였다.

장교들은 대부분 2년 단위의 보직을 마치면 다음 근무지로 이동하면서 이사비나 새집마련을 위해서 많은 돈을 사용한다. 하지만 부사관들은 한 부대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면서 알뜰하게 돈을 모아 부자로 떵떵거리며 살았다.

포대 행정부사관은 나의 은행이었고 부자부사관이었다. 그러나 모든 부사관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1983년 보병21사단 포병대대장으로 부임한 며칠 후 부대주변의 술집과 상점을 돌아보며 간부들의 외상값을 파악해본 결과 놀랍게도 부사관들의 외상값이 그때 돈으로 100~200만원에 달했다.

그 액수는 중사가 일 년간 봉급 한 푼도 안 쓰고 갚아야 할 규모였다. 빚이 많은 부사관들의 사생활을 바로잡기 위해서 몇 가지 조치를 취했다. 술 중독으로 구제 불능한 부사관은 본인이 원하는 전역형태로 군문을 떠나게 했다. 나머지는 적금을 권장해 2년 만에 대대는 저축 우수부대로 선정돼 부대표창을 받았다. 부사관들은 술을 끊고 3년 동안 저축한 목돈으로 부대 근처에 집을 구입했다. 대대장을 마치고 군수사령부로 전속해 근무하고 있을 때 필자는 한 부사관 부인의 감사 전화를 받았다.

그 부인은 "대대장님 술꾼 남편을 바르게 살도록 지도해주셔서 이번에 적금을 찾아 집을 구입했습니다"라며 울먹였다. 성경에서도 "똑같은 돈을 주고 몇 년 후에 원금을 제일 많이 늘린 사람을 칭찬했다"는 말이 있다. 누구나 땀 흘려 번 돈은 모두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빌리 그레임은 "돈을 버는 데 그릇된 방법을 썼다면 그만큼 그 마음속에는 상처가 나 있을 것이다." 즉 옳은 방법으로 돈을 벌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정당한 노력의 대가로 돈을 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쓰는 방법이다. 인색하거나 낭비하는 사람보다는 자신은 검소하고, 남에게는 베풀어 덕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 즉 돈을 모으는 것보다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국가에서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 해도 술과 도박으로 쓴다면 새는 바가지와 같을 것이다. 내가 돈을 어떻게 벌어 얼마를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가 되듯이 군에서도 봉급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부자 부사관, 가난한 부사관으로 나누어진다. 부자 부사관들은 검소하고 근면한 생활로 알뜰하게 모은 사람들이다. 부사관들은 국가방위의 역군으로 군대의 핵심이다. 이들의 가정이 우선 안정돼야 전쟁에서 싸워 이길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물질적인 부자보다 국민들로부터 명예롭고, 군내에서 자부심을 갖는 마음의 부자가 되어야 한다. 즉 군인의 사기는 승패를 좌우한다. 부자 부사관이 많으면 많을수록 국방은 튼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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