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우는 바람소리
홀로 우는 바람소리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3.25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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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천
이영창 <수필가>

머뭇머뭇 겨울은 가고 봄이 시작되었다. 이미 한 달이 다 되었다. 그러나 오다가고 오다가는 봄, 언제 또 복사꽃 피워 놓고 눈발이 날릴지는 모르는 일이다.

언젠가 인근 산 정상에 올라 쉬면서, 월별로 따져 봄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나는 3월부터 봄의 시작이라고 하였고 나보다 연장이신 분들은 4월부터라고 했다. 그래야 12월에 가서 딱 맞는다는 것이다. 어른들 여럿이서 우기는 바람에 나는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사실 4계절을 월별로 따질 수는 없다. 기후의 변화에 따라 3월일 수도 있고 4월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후의 변화로 보아 12월부터 2월까지 겨울로 치고 3월부터 봄이 시작되는 것으로 따지는 것 같다

3월이 시작하자 계속 화창한 날이 이어지니, 새롭게 찾아오는 계절이 틀림없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무엇인가 꾸며서 변화를 주고 싶었다.

어제는 내 고장 5일 장 구경을 갔다. 우리 집에 흔히 나도는 화분에 백합을 구입해 심고, 여름이 시작되면 향기 짙은 집을 만들고 싶어서다. 백합은 햇빛을 직접 받지 않는 서늘한 곳에서 자란다고 했다. 화분 7개에 백합종자를 구입해 심었다. 심고 나니 어느 시인이 생각난다. 백합향기에 취해 잠들고 싶다던.

그 사람은 지금 무엇을 할까 나와 만나면 인생을 논하며 한잔 술을 나누던 사람. 어떤 일에서나 남보다 앞서 일하며, 여러 사람을 솔선수범으로 유도하던 사람이다. 그는 부모도 없고 아내도 없다. 직장에서 돌아와도 반겨 주는 사람이 없었다.

언젠가 나는 그에게, 작은 개, 요크셔테리어 새끼 한 마리를 선사했다. 그가 자라서 집을 지키고 주인이 퇴근하면 맞아 주는 유일한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그도 주인과 마찬가지로 주인 없는 집에서 언제나 혼자 지낸다. 그래서 주인이 돌아오면 반가워 죽는단다. 그와 나는 술잔을 자주 나누는 사이인데 내가 술을 끊자 그도 술을 끊었다. 그는 시인이었다. 하찮은 생명이라 할지라도 지극히 사랑하는.

언제 그는 직장을 옮겨 여러 사람을 거느리는 과장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밝지를 못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일년간 봉급을 받지 못했다고 하였다. 어느 사기꾼 사장의 농간에 속은 것이다. 그 뒤로 그를 볼 수가 없었다.

소식이 깜깜하던 어느 날이었다. 그는 나를 전화로 술 한잔하자고 했다. 나와 같이 술을 끊었던 사람이었다. 언제나 만나던 장소에서 우리는 만났다. 그는 그때까지 봉급을 받지 못했고 내가 준 유일한 개마저도 죽었다고 한다. 그 뒤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도 그날은 그와 함께 약간의 술을 마셨다. 그날 헤어진 후 그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어디로 갔으며 어디에 정을 붙이고 살아갈까 우리 집에 백합향이 가득하면 그를 부르고 싶었는데, 봄바람만 심하게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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