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의 에세이
김우영 <소설가>어느 마을 동구 밖에서 이상한 놀이를 하고 있었다. 길 가운데 큰 나무를 박아 놓고 힘쎈 장정들이 서로 그 나무 뽑기놀이를 하고 있었다.
체격이 건장하고 늠름한 젊은 그들은 깊게 박힌 그 나무를 끌어안고 뽑으려 갖은 힘을 다 써 보지만 땅속에 깊게 박힌 그 나무는 해보란 듯이 꼼짝 않고 있었다.
마을 동구 밖에서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자 그 사이사이로 지나가던 여자들도 그 광경을 보고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때 이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어느 노인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은 이 나무를 뽑을 수 없습니다. 다만 이 중에 있는 여자들이 이것을 뽑을 수 있을지 모르겠소. 만약 이 나무를 뽑는 여자가 이 중에 있다면 내가 열녀비를 세워 주고 이 시대 최고의 정숙한 여자로 흠모하겠소" 하고 그 노인이 단호하게 설명하고 나섰다.
호기심에 가득찬 여자들은 그 자신이 이 나무를 뽑아 열녀로서 주위의 칭송을 받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지 구경하던 여자들 하나 둘이 소매를 걷고 그 연약한 팔로 땅에 박힌 나무를 끌어 안고 낑낑 대고 있었다.
여러 사람의 여자들이 그 나무를 뽑으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땅에 깊게 박힌 나무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 후 며칠을 두고 수많은 여자들이 그 나무를 그야말로 쑤욱 뽑아내어 주위로부터 '열녀'라는 칭송을 받고자 그 나무를 붙들고 뽑으려 했으나 나무는 미동도 안했다.그렇게 여러 날을 지낸 어느 날 정숙한 40대의 한 여인이 단아한 모습으로 나타나 다소곳이 소매를 걷고는 땅에 박힌 그 나무를 잡고 힘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놀라운 기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근에서 힘꼴이나 쓴다는 젊은 남자들도 그렇게 온 힘을 다해 기력을 써도 끄떡도 않던 그 나무가 가녀린 그 여인의 양팔 속에서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으니.
그렇게 10여 분이 흘렀을까. 땅에 단단히 박힌 나무가 거짓말처럼 쑥 뽑혀 그 여인의 가슴에 아주 작게 안겨 있었고, 이마에 구슬처럼 흐르는 그 여인의 땀은 참으로 대견하였으며, 고귀한 아름다움과 깨끗한 한 여인의 위대한 자태였다.
이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노인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 이 여인이야 말로 이 나라 최고의 순결한 백옥같은 여인이요, 우리는 이 여인의 변함없는 정조를 본받아야 하오. 여자의 정조란 참으로 위대한 대가요. 그간 수많은 여자들이 이 나무를 뽑으려고 애는 썼지만 그 여자들은 완전한 순결여성이 아닙니다. 젊은 시절 차 안에서 혹은 길가에서, 영화 속에서 잘생긴 어느 미남자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생겼던 부정한 마음을 가졌던 것이랍니다. 마음속의 간음도 이미 여자의 정조를 잃는 거나 매한가지입니다"라고 말하고는 그 노인은 저 동구 밖 둑길을 따라 총총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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