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여행
크루즈 여행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3.09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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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 영 희 <수필가 충북교육과학연구원 총무과장>

이천을 지나면서 차 속도가 점점 느려지더니 아예 정차 수준이 되었다.

중형 택시 뒷좌석에 4명이 끼어 앉아 좀 불편하지만 우스갯소리도 하며 지루한 줄 모르고 여기까지 왔는데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되자 불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여행의 격조는 빠르기와 반비례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금 크루즈 여행을 하고 있다'고 세뇌작업을 해도 평온해 지지 않는다.

토요일 서울 상행이 이렇게까지 밀릴 것이라는 생각을 미처 못한 게 잘못이다. 버스를 타고 가서 전철로 갈아 탔어야 했는데, 편하고자 택시를 이용한 것이 비오는 날 양반 걸음걸이가 되고 만 것이다.

모두들 애써 태연한 척 조급증을 누르면서 버스전용차로를 부러운 듯 바라본다.

바쁜 계절이다 보니 출간기념회에 3명만 참석할 수 있다고 했는데 2명이 고심 끝에 일정을 바꾸어 참석하면서 일이 꼬인 것인지, 주문한 꽃까지 늦어서 출발이 지연되고 말았다. 내 딴에는 계획까지 바꾸어서 참석하려고 나섰지만 정원이 초과되어 돌아갈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으나, 봄나들이하기 좋은 날씨에 어차피 나선 길이니 같이 가자는 권유에 동승을 한 것이 미안함으로 다가왔다.

답답한 마음에 창문을 열고 하늘을 보니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그렇게 청명할 수가 없다. 이런 날 산에 갔더라면 하는 미련이 삐죽이 고개를 내밀면서 자주 가던 산마루가 삼삼하게 떠오른다.

서울톨게이트를 통과했는데도 계속 밀리자 내려서 전철을 타고 가는 것이 빠를 것 같다는 제안에 좋은 의견이라고 맞장구를 치면서 우리 일행은 5인조 특공대처럼 쏜살같이 내려서 지하철역으로 향하였다. 전철을 타려고 개찰을 하는데 한 분이 개찰구를 나오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 급한 마음에 밑으로 빠져나오라고 손짓을 했지만 계속 반복을 하니 기계도 감동했는지 겨우 통과 할 수 있었다.

그 빠르다는 지하철이 왜 그리도 느리게 느껴지는지 수시로 행사장과 통화를 하면서 묘안을 찾았지만, 정해진 행사시간을 무작정 늦출 수는 없어서 10분을 늦게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 때문에 출간기념회에 참석하신 많은 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은 아닌지 원만한 진행을 도와드리지 못하여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30분 늦게 도착하니 우리 측에서 맡았던 약력소개나 내빈 소개시간은 이미 지나고 출간기념패와 꽃다발, 작품낭송만 겨우 할 수 있었다.

1부 행사가 끝나고 2부 식사시간에 촌놈의 진가가 나타났다. 청주에서처럼 식탁에서 먹을 생각으로 음식을 각자 덜어 담았으나 거기는 스탠딩 뷔페였다.

"스탠딩 뷔페라고 해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 먹는 줄 알았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서서 먹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 분이 말하자 우리는 박장대소를 했다.

역시 촌놈은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물을 찾았으나 이미 물이 떨어진 뒤라 대신 맥주를 따라서 "촌놈을 위하여"로 예정에 없는 건배를 했다. 그때서야 타고 온 택시가 시위로 인하여 행사장으로 출입을 할 수 없으니 끝난 후 시내 모처로 오라는 휴대폰이 울렸다.

몇 번을 묻고 또 물어 나중에는 종로지구대까지 들어가 물어서 겨우 타고 온 택시를 찾아 탑승을 하고나니, 나 같은 촌놈은 살 곳이 못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모두 문인들이라 돈 주고도 못할 좋은 경험을 했다고 하면서 서로 내 탓이라 하고 호두과자를 들려준다. 출발한 지 10시간 만에 집에 도착해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한 호두과자를 우걱우걱 씹는다.

송충이는 역시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눈을 돌리니 텔레비전 화면에 크루즈호가 유유히 떠가고 있다.

방금 그 배에서 내린 양 오늘 하루는 크루즈여행으로 갈무리 될 것이다. 추억은 아름다운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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