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중년부인의 봉투
어느 중년부인의 봉투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1.28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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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 양 희 충청북도청소년 지원센터소장

한창 귀성 전쟁이 시작될 무렵 서울에 있는 아이가 출발 시간을 알리는 전화를 했다.

"엄마, 오후 7시5분 차인데 아마 많이 막히나 봐요. 걱정하지 마시고 그냥 편히 주무세요."

저녁을 먹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괜스레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벌써부터 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되어버렸다느니, 그 사이 빙판길 교통사고로 몇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는 뉴스가 시시각각으로 자막 처리되어 알리고 있었다. 찌그러진 자동차의 모습과 눈길 갓길에서 서성이며 안절부절못하는 귀성객들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면서 맘도 더욱 불안해져 갔다.

새벽 4시가 되어서도 도착하지 않는 아이가 못내 맘에 걸려 무조건 버스터미널로 나가 보았다. 몇몇 마중객이 서성거렸고 그 사이로 버스 한대가 들어왔다. 13시간만의 도착이란다.

무표정으로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과 피곤한 표정으로 날씨 탓 하는 사람도 있었고 도로공사의 적절치 못한 대응에 투덜거리는 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기사님의 능숙지 못한 대처에 볼멘 목소리도 섞여왔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민심도 삭막해졌다. TV에서는 매일 싸우는 뉴스로 도배를 하고 단 1분의 여유도 없이 모두가 숨가쁘게 돌아가는 사회. 내 잘못 보다는 상대방의 허점을 더욱 부각시키는 사회 풍토에서 내겐 참으로 아름다운 충격()의 사건이 있었다.

당시 상황이 상황인지라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겠다 싶어 돌아서려는데 버스에서 내리던 한 중년 부인이 아주 공손하게 버스기사에게 조그만 봉투를 건네는게 아닌가. 그 표정은 마치 '우리는 간혹 잠도 잘 수 있었지만 기사님은 장시간 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 모두가 네 탓 내 덕을 외치며 목소리 높일 때 이 중년 부인의 무언의 감사 표시는 진정 이 시대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흉보면서 따라하고 칭찬하면서 배우는 법이다.

예년에 없이 폭설이 내려 이 추운 새벽녘, 충분히 따뜻했을 그 모습이 내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 모두 매사에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그리고 작은 것에 감사하자. 이렇게 모든 걸 긍정적으로 배려할 때 그 기쁨은 부메랑이 되어 더 큰 기쁨으로 다시 되돌아오게 마련이다.

지금도 상담지원센터 사무실 한 켠에서 선생님들과 상담 도중 가끔씩 세상을 원망하는 눈망울로 멍하니 앉아있을 청소년의 모습이 떠오른다.

새해에는 마음의 성장통을 앓고 있을 우리 청소년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매사에 네 탓, 내 덕으로 돌리지 말고 함께 행복해졌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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