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두들의 행진
사두들의 행진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1.15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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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규량의 산&삶 이야기
한 규 량 <충주대 노인보건복지과 교수>

언뜻 보기에 우리나라의 1960년대를 보는 듯했으나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카투만두는 흥미롭고 볼거리 많은 커다란 장터였다. 우리나라의 재건 단합시절에 청소년기를 지낸 나로서는 고향에 돌아온 것 같은 친근감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산업화 이후에 태어난 나의 학생들은 사뭇 다른 반응과 태도를 보였다.

신발이 없어 맨발로 다녀본 적도 없고, 학용품 등의 물자의 부족함을 알 리가 없고, 배고픔을 경험해 본 적 없고, 힘든 노역같은 것은 구경도 해 보지 않은 학생들이다. 젊어서 고생 사서도 한다는 식으로 자처한 고행길이었지만 그들의 얼굴에서 후회스럽고 황당한 표정을 읽어냈다. 그런가 하면 설마하니 험한 일을 시키겠는가 하는 우려의 말도 뱉어냈다. 한 학생은 "이 정도로 후진국인 줄 몰랐다"고 하며 "그래도 한국에서 태어나길 얼마나 잘하고 고마운 일인지 모르고, 대한민국이 자랑스럽다"고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두려움과 걱정의 빛이 역력했다. 그 모습에서 공연히 따라온 것 아닌가 하는 후회의 눈빛을 보았다.

초등학교 시절 미군 구호품인 우유와 옥수수빵을 배급받아 먹던 것을 경험한 나로서는 그 시절의 우리나라 변화과정을 네팔을 통해 '대한늬우스' 영화 필름을 다시 돌려보는 것과 같은 착각을 했다. 순간 울컥했다. 만약 우리나라 역시 가난의 역사를 지금까지 지속했었더라면 내가 이 네팔 땅에 발을 디딜 수가 있었을까 생각했다. 우리 부모세대의 고생의 값어치 덕분에 호의호식했었음에 마음이 움찔했던 것이었다.

온갖 소음과 부산함 속에서도 시간은 흘러 과거와 현재가 수없이 교차하는 기현상을 느끼는 순간 건너편 차선의 현란한 도색을 한 버스에서 차장이 버스 옆구리를 탕탕치면서 스쳐 지나갔다. 기대에 부풀어 처음 해외를 나온 학생들에겐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처음부터 선진국에 나가 자존감을 상실하는 것보다는 훨씬 교육적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자위했다. 더르바르 광장은 카투만두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외국인 관광객은 물론 네팔인들도 무척 좋아하는 곳이다. 이 광장 주변으로 많은 호텔들과 요식업소 및 관광객에게 물건을 파는 상가 및 잡화상가가 즐비하게 늘어선 곳이다. 구석구석 좁은 골목길로 연결되어 있어 구경거리가 무척 많아 좋은 곳이다.

한여름이었기에 소나기가 한차례 지나간 뒤 푹푹찌는 길거리 습도에 질퍽거리는 포장 안 된 흙길조차 신선함으로 내겐 다가왔다. 내일부터는 시골의 산골마을로 들어가 봉사할 계획이므로 잠시 잊은채 아니 신기한 광경들에 사로잡혀 광장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 가운데 우리의 시선을 끈 것은 샤리처럼 똥색 천을 걸친 사두(도를 닦고 있는 힌두교의 수도자들이라고 칭할 수 있음)들의 행진이었다. 그들도 우리의 시선을 눈치 챘는지 점점 다가왔다.

긴 머리를 늘어뜨린 사두, 우리의 상투처럼 머리 위에 틀어 올린 사두, 얼굴과 몸에 하얀 분칠을 한 사두들이 이마에 빨간 점을 찍고 있었다. 급기야 우리 일행 앞에 다가서더니 우리들 이마에 빨간 점을 찍어주었다.

그러나 신비의 점을 내 이마에도 찍어 네팔인으로 흡수동화된 듯 좋아하면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기뻐할 순간도 잠시였다. 한 사두가 네팔어로 무어라 말하더니 "원 달라"를 외치며 검지손가락으로 1을 가리켰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말이지만 분명히 해석은 가능했다. 이마에 빨간 점을 찍었으니 1달러씩을 내라는 뜻인 것을…. 학생 중 한 명은 몹시 불쾌감을 나타냈다. 우리 모두 1달러를 주겠다고 하니 고개를 옆으로 갸우뚱거렸다.

도리도리질도 아닌 옆으로 갸우뚱거리는 제스처가 된다는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를 몰랐으나 1달러만을 시주한 채 떠났다.

거리엔 이런 사두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수도승의 탁발과도 같은 힌두교 사두들의 수행의 하나라는 것을 그들이 떠난 뒤에 알았다. 인간사 매사가 한 반자씩 늦되는 것을 알고는 나는 또 후회를 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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