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 메가리데성
<159> 메가리데성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1.05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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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덕의 오버 더 실크로드
세월의 풍상 견뎌낸 육지위 작은섬

페데리코 2세는 여기에 파수대를 설치하고 카를로 디 안죠 1세는 이곳을 왕궁으로 삼았다. 로베르토 디 안죠에 의해 새로운 파수대를 설치하고 1300년 말기에 이 장엄한 건축물에 새로운 골격을 갖게 만들었다. 메가리데 섬에 위치한 이 성은 일명 메가리데성이라고도 부르며 고대에는 로물루스 별장의 일부였는데, 이후 성이 건립되어 요새와 감옥으로 사용되었으며 1691년에 개조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거대한 암반을 지반으로 그 안에서 파낸 돌로 성을 쌓았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2000년이 경과하는 동안 천재지변과 전쟁 등으로 끊임없이 개조되면서 다양한 시대와 건축양식을 포용하고 있다.


메가리데 성은 나폴리의 발상지일 뿐만 아니라 2000년 고도 나폴리의 가장 중요한 도시적 원점인 곳이다. 1994년 '메가리데선언 94'를 개최하여 도시계획 헌장을 공포하였고 G7 정상회담이 열린 장소이기도 하다.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고 중요한 국제행사만 열리는 곳이어서 평소에는 방문하기가 어렵다. 활처럼 휜 나폴리항 한가운데서 바다로 돌출한 섬 전체가 메가리데 성이다.

나폴리 앞 바다 가운데 성이 솟아있고 육지에서 방파제로 이어져 있다.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이 통째로 옛 성인 것이다. 마치 돌로 만들어진 도시형식의 항공모함이 산타 루치아항에 정박하고 있는 듯한 형상이다.

나폴리인들은 섬 안에 작은 도시를 응축해 놓은 것이다. 내부에는 아직까지 노르만디의 파수대와 아주 오래된 산 살바토레 소성당, 은둔자들이 사용하던 수도원의 독방들, 왕실의 방들 중 루쿨로 별장의 로마시대 훌륭한 원주가 있는 큰 방 등이 보존되어 있다. 또한 4천여 점의 원시시대 주거, 수공업, 농업 유물들을 보유한 흥미로운 선사토속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메가리데의 성벽을 바라보면서 나폴리 일정을 마쳐야 했다. 가난한 남부 이탈리아인들이 신대륙을 떠나기 위해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들이 이별의 눈물을 나누며 손을 흔들던 산타 루치아 항구가 눈부신 햇살 속에 누워있다.

밤이면 젊음이 넘치는 단테 광장과 장원에서 벌어지는 한밤의 음악회, 배 고픈 것까지 행복하게 느끼게 하는 참으로 맛있는 나폴리의 피자들과 비록 낙후되었지만 낙천적이고 열정을 잃지 않는 나폴리 시민들의 모습들이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해변에 작은 보트를 타거나 일광욕을 하는 남녀의 모습에서 그리스 로마시대의 예술작품들이 육감적이며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지를 확연히 느낄 수 있는 전경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과 짙푸른 쪽빛 바다를 앞에 두고 무엇을 감추고 가릴 수 있었을 것인가.

작열하는 태양아래 무엇을 가린다는 것은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푸른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나타나는 아름다운 여인의 곡선미와 젊은 청년의 균형 잡힌 근육질 몸매를 보면 자유스러운 예술적 감각과 상상력을 가진 자의 눈에는 그 자체가 소우주며 하나의 아름다움이었을 것이다.

◈ 세계문화유산의 보고(寶庫) 로마

3천년의 역사를 가진 로마는 세계문화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고 가장 중요하고 오래된 도시이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살아있는 야외박물관으로 문화유적의 개념으로 보면 이곳에서는 어떤 특정한 지역이나 건축물에 해당되기보다는 로마시내의 모든 전경 그 자체가 인류문화의 보고라고 볼 수 있다.

로마에서 형성된 라틴어는 2000년에 걸쳐 지중해 문화를 지배하였으며 고대 로마 법전은 서양의 법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로마의 국교인 기독교는 유럽으로 전파되어 서양을 기독교 문화권으로 형성하게 만들었고 로마인들의 예술이나 건축양식은 오랜 세기를 통해 다른 나라의 모범이 되어왔다.

이 도시는 지중해를 장악하고 대제국을 만든 로마제국의 수도로서 세계를 호령하였고 기원후에는 로마교황청이 있는 기독교의 중심지로서 정치와 문화, 경제와 종교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여 왔던 세계문화의 심장과도 같은 도시이다.

로마 기차역에 도착하자마자 키 작은 한국인 아저씨가 웃으며 다가와 그의 권유에 이끌려 민박집에 숙소를 정했다. 기차역 인근 낡은 건물 안에 설치된 철망그물로 만든 엘리베이터를 타고 민박집을 들어섰을 때 고향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김 아저씨 집에는 연변댁 아주머니가 식사를 해주고 있고, 방 안은 이층 칸막이 침상을 만들어 놓고 한국에서 온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민박을 하고 있다. 몇 달 만에 먹어보는 한국의 라면과 김치 맛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식사 중에 물 한 컵 무료로 제공하고 반찬하나 더 서비스 하는 나라는 흔치 않다. 화장실도 우리나라처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나라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을 나가 여행을 하다 보면 한국인들의 인심이 얼마나 넉넉하고 인간적인지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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