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여성은 사회적 약자다
아직도 여성은 사회적 약자다
  • 연숙자 기자
  • 승인 2008.12.17 22: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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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연 숙 자 교육문화부장

지난달 20일 청주지방법원에서 내린 판결문 하나가 전 국민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적이 있다. 지적장애를 가진 10대 소녀를 8년 동안 성폭행한 친인척에 대해 재판부가 집행유예 선고를 내렸기 때문이다. 선고 이유는 피고인들이 부모를 대신해 피해자를 키웠고, 피해자의 장애 정도에 비춰 앞으로도 피고인들의 지속적 관심과 도움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 점을 참작했다고 한다.

이 솜방망이 처벌에 대해 전국 여성계는 물론 각계로부터 지탄이 쏟아졌다. 특히 재판부가 친인척의 패륜적 범행을 인정하면서도 피해자의 장애 정도에 비춰 앞으로도 피고인들의 지속적 관심과 도움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 점을 참작해 집행유예를 내렸다는 당시 판결문은 불난 데 기름을 붓는 격이 되어 사회적 파장을 더 크게 일으켰다.

그리고 한 달이 되어가는 지난 16일 청주지방법원 앞에서는 장애아동 친족 성폭력에 대해 올바른 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장애아동 친족성폭력 집행유예 판결 바로잡기 대책위원회'가 인면수심의 범죄자를 강력히 처벌해 성폭력 근절 의지를 분명히 하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한 차례 홍역을 치른 뒤라선지 아니면 경기침체로 세인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탓인지 회견장소엔 소수의 인원만이 참석해 취지를 무색하게 했다. 물론 사람 머릿수만으로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는 없지만 들끓던 여론도 시간이 지나면서 용두사미에 그치는 경우를 숱하게 보아온 터라 한 차례 파문으로 끝나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한 개인의 인권이 낱낱이 파헤쳐진 채 본질은 사라지고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 이슈로만 남아 사건이 잊혀지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며 또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아직도 약자임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능력없는 여성은 어떠한 경우에도 남성의 보호가 필요하다는 판결문의 기저는 남성중심의 사회가 가진 구조적 문제가 얼마나 단단히 뿌리 내리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피해자를 위해 가해자에게 내려진 집행유예 처벌은 구조를 바꾸려는 의지보다는 오히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권조차 박탈하고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되었다. 미약하나마 법적 시설이 존재하고 자립의 근거가 존재함에도 장애인 스스로의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구조적 문제점을 확연히 드러낸 셈이다.

그래서 이번 판결로 여성들이 받아들여야 할 충격은 남성과는 사뭇 다르다. 여성운동이니 여성인권이니 하는 말 자체가 여성의 발목을 잡는 상황에서 상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남성들로서는 인권을 벗어나면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단순히 여성이기 때문에, 장애인이기 때문에 인권을 보장하란 말은 아니다. 벽이 되는 경계를 허물고 수평적 관계 속에서 새로운 관점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권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 잘못은 잘못한 대로 처벌하고, 개선의 여지가 있는 사회적 구조에 대해선 법과 제도를 보완해 나가며 모든 사람들의 인권이 존중되길 바랄 뿐이다.

이번 사건은 아직 진행 중이다. 단지 지적장애인 10대 소녀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인권이란 생각으로 관심있게 지켜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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