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달력을 보면서
마지막 달력을 보면서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12.10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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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천
이 규 정 소설가

무자년(戊子年)의 올해도 어느 사이에 마지막 달력을 들여다 본다. 하룻밤의 꿈처럼 지나가는 한 해가 아무리 아쉬워도 되돌리지 못하는 것이 세월이다. 올해는 무엇을 하겠다고 계획하는 것들이 제법이나 많았지만 시작조차 못하고, 그나마 진행하던 것조차 제자리걸음에서 내년으로 미루어야 할 모양이다. 내 딴에는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다는 것조차 신통치 않은 결과에서 안타깝지만 그 또한 부족한 능력에서 한계를 느낄 뿐이다.

벌써부터 길거리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걸려 있는 곳도 제법이나 많다. 한겨울로 접어드는 날씨가 여간 매서운 것이 아니다. 두툼한 옷을 걸치고서도 움츠러드는 몸뚱이가 바깥출입조차 거부한다. 거기에 경제조차 어두운 전망에서 그것을 마치 입증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우리 회사는 물론 회사마다 생산설비가동률이 낮아지는 추세다. 그런데 날씨조차 추워지면서 움츠러드는 살림에 이번 겨울을 어떻게 견디어야 좋을지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붙잡고 매달리는 직장에서 그나마 다행이다. 아직도 하루 세끼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제법이나 많다. 한겨울에도 귓불이 얼어붙는 냉방에서 보내는 사람은 물론 길거리에서 노숙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지난번에 퇴근하다가 라디오에서 연탄은행운행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우연찮게 듣는 말에서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사연이 많았다. 나도 조금이나마 함께 하겠다고 인터넷 검색에 연탄은행의 홈페이지를 찾았더니, 곧바로 홍보대사가 홍보용으로 녹음된 말이 흘러 나왔다.

연탄은행을 알고 계세요 이웃을 위해 따뜻한 마음을 저축하는 곳인데, 생각해보면 나눌 만큼 쉬운 일도 없어요. 연탄 천사들처럼 그냥 나눌 수 있는 것만큼만 나누시면 되거든요. 300원만 연탄은행에 저축하세요. 당신도 이웃도 따뜻해집니다.

비록 홍보용으로 흘러나오는 말이지만 듣는 것만도 가슴이 포근해졌다. 한동안이나 반복하며 들어서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 홈페이지를 휘둘러보니 연탄만 나누는 것이 아니었다. 무료급식, 집수리, 의료지원, 안경지원에 영정사진까지 지원하면서, 연탄은행의 지원내역을 훑어보는 것만도 한참이나 걸렸다. 아무리 좋은 사업이라도 역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자금이었고 주민들의 관심과 동참이 뒤따라야 가능한 사업들이다.

사람의 아름다움이란 자신을 돌아보는 여유라고 한다. 연탄 한 장이 몇 천원이나 하는 것도 아니다. 연탄천사들처럼 그냥 나눌 수 있는 것만큼 나누는 것처럼 쉬운 일도 없는데, 아무리 박봉에 쪼들리는 살림이라지만 그만한 여유도 없이 살았다는 것이 부끄럽다. 올해도 마지막 달력에 한 해를 뒤돌아보면서, 내가 왜 그렇게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후회하는 일들이 참으로 많기도 하다.

회사에서 부서마다 한 달에 한 번씩 일정하게 봉사활동을 한다. 이전에는 최소한 네다섯 번은 참석했는데 올해는 하찮은 글을 쓰겠다는 핑계로 한 번을 못 갔다. 이제라도 미약하게나마 연탄은행에 동참하고 회사에서의 봉사활동도 가능한 참석해야겠다. 그런데 나는 그놈의 작심삼일이라는 것이 꼬리처럼 매달려서 떨어지지 않는다. 오죽하면 내년에도 후회하는 일이 적어진다는 것을 장담하지 못하다보니, 아직도 나는 마음의 여유를 찾는 사람이 되기까지는 한참이나 멀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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