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 문백전선 이상있다
330. 문백전선 이상있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10.27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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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보무사<645>
글 리징 이 상 훈

"장산, 자네에게 한 장수 얘기는 없던 것으로 할까"

그러자 용두가 발끈 성을 내며 운파에게 정면으로 맞받아치듯이 말했다.

"방금 하신 말씀에는 어패가 조금 있는 듯 하옵니다. 운파님께서는 호위무관 장산의 능력을 제대로 검증해 보시지도 않고 어찌 그런 속단을 함부로 내리시는지요 왕비님은 우리 병천국의 모든 보물 가운데 가장 으뜸이 되는 보물이시온데 그런 귀중한 보물을 장산이 안전하게 지켜드린 것만으로도 전장(戰場)에 나가 크게 이겨 공(功)을 세운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이렇게 그의 공이 매우 클진대 이를 무시하고 아무런 포상도 내리지 않고 그냥 가만히 놔둔다는 것은 삼척동자라 할지라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옵니다. 그러니 그 점을 고려해서라도 호위무관 장산에게 장수직을 일단 맡겨 보십시오. 그러고 나서 그의 능력을 천천히 다시 평가해 본다하더라도 결코 뒤늦거나 헛된 일은 아닐 것이옵니다."

"하지만 가암이 조금 전에 좋은 예를 들어 말했듯이, 여자를 우리 병천국이라 가정하고 장산을 남자라 가정했을 때, 두 남녀가 무모한 사랑 짓거리를 하고나면 남자로선 깨질 때 깨지더라도 최소한 본전 정도는 건질지 모르나 여자로선 이만저만 손해가 나는 게 아닐 것이외다. 남자야 무슨 짓을 하더라도 나중에 그걸 물에다 깨끗이 한 번 헹구거나 대강 문질러서 닦고나면 아무런 흔적조차 남지 않겠지만, 여자는 단순히 뚫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크나큰 손실인데다가 자칫하다 애까지 배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칫하다 큰 낭패를 보는 건 여자 아닙니까 만에 하나 우리 병천국이 이런 거지같은 꼴을 당한다면 어디 가서 하소연할 데조차 없는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잘해 봤자 본전이요 자칫하다 손해 보기 십상인 여자의 입장이 되어가지고 우리가 이 문제를 보다 냉정하고 심도 있게 다뤄보았으면 하는 것이 바로 저 운파의 희망이자 의견이옵니다."

"으흠흠."

"으흠흠."

즉석에서 감정까지 섞어가며 자기 의견을 적절히 피력하는 운파의 말에 아우내왕과 수신왕비, 그리고 그 주위에 있는 신하들은 대체로 공감내지 수긍을 하는 눈치들이었다.

그러나 이런 운파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는 자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바로 그 당사자인 호위무관 장산이었다.

'뭐야 아니 그럼 내가 실속도 없이 겉만 번지르르한 남자의 물건 같은 존재란 말인가 거 참! 왜 하필 기분 나쁘게 부실한 남자의 물건 따위에 나를 비유하는가 거기에다 한술 더 떠가지고 여자를 울리는 파렴치한 사내놈으로까지 비유를 하다니 왕비님을 위험에서 구해낸 나의 무용(武勇)을 칭찬해 주지는 못할망정 이런 망신을 줘야 옳단 말인가! 저 X대가리를 똑똑 분질러서 깨먹어도 시원찮은 놈들!'

장산은 가암과 운파가 자기를 은근히 빗대어가지고 이제까지 떠들어댔던 말들을 하나하나 되새겨 생각해보니 어젯밤에 먹은 것까지 죄다 토해낼 만큼 심히 역겹고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당장 생각 같아서야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는 저 운파를 단칼에 요절내주고 싶다만 그러나 지금 이곳은 왕 내외와 신하들이 모두 모여 있는 엄숙한 자리가 아닌가 그러니 본의 아니게 화를 꾹꾹 눌러가며 태연한 척 참고만 있자니 장산으로선 아주 죽을 맛이었다.

"장산! 어떤가 가암이 조금 전에 했던 말과 운파가 방금 말한 의견에 나름대로 일리가 꽤 있어 보이는데. 그리고 자네 역시 병천국의 장수 자리를 크게 연연해하거나 탐하지는 않는 것 같으이. 그럼, 자네에게 장수 운운 했었던 얘기는 아예 없었던 것으로 할까"

아우내왕은 자기 딴엔 무척이나 아껴주고 챙겨주는 듯 온화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어 장산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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