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전어와 직지축제
가을 전어와 직지축제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9.05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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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 규 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가을의 전설이 된 생선이 있다.

바로 '전어'다.

전어의 이름에 대해 조선의 실학자 서유구는 '임원경제지'에서 "기름지고 맛이 좋아 상인들이 염장(鹽藏)해서 파는데 신분의 귀하고 천함이 없이 모두 좋아한다. 맛이 뛰어나 이를 사려는 사람이 돈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전어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 전어가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는 대명사로 대접받게 된 것은 사실 그리 오래지 않다.

바닷물 온도의 상승 등의 원인으로 서해안에서도 풍부하게 잡히고, 그에 따라 전어축제를 여는 바닷가 마을도 많지만 전어의 주 무대는 남해안, 그것도 전남 여수 감도의 여자만 인근이었다.

게다가 전어의 주 역할은 횟감이나 구이용 보다는 밤젓(전어의 내장 가운데 위부분만 모아 담근 젓갈)이나 새끼로 담은 엽삭젓, 전어속젓에 불과했다.

바닷물을 고스란히 화물차에 담아 살아있는 채로 도회지까지 배달할 수 있는 운송수단의 발달과 양식이 가능한 수산 기술의 발달로 전어를 횟감이나 구이용으로 주로 애용하는 지금의 먹거리 세상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전어가 가을이면 누구나가 군침을 흘리는 대표적인 국민생선이 되기까지에는 이야기의 힘이 크다.

전어에는 '가을 전어 굽는 냄새에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거나 '(가을)전어 머리에는 깨가 서 말.'이라는 속담이 어김없이 따라 붙는다. 그만큼 고소하고 맛이 좋다는 뜻일 터이나 사실 그런 속담만큼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무언가 아쉬운 것이 전어이다.

그럼에도 마치 가을 음식의 대표적 전설로 전어가 대접받게 된 것은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속담, 즉 이야기에 현혹됨이 큰 것이다.

그런 이야기 속의 상상력과 강한 흡인력은 문화산업 시대에서의 스토리텔링의 저력과 중요함을 강조할 수 있는 요인이 된다.

'상상'을 주제로 하는 2008 청주직지축제가 화려한 막을 열었다. 고려주막이 등장하고 고려 퍼레이드가 재현되며, '주자소의 하루'라는 연극이 공연되는 등 이번 2008 청주직지축제에도 다양하고 풍부한 이야기가 넘쳐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존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으로서의 직지'만으로 예찬하고, 1377년이라는 역사적 가치에만 몰입하는 방식의 접근은 불안하다.

직지는 실체가 없다. 아니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인쇄된 것이라는 진실 혹은 진리는 프랑스 국립박물관에 분명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당시 주조된 금속활자의 실체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고, 책 '직지'의 상권 역시 국내는 물론 지구상 어느 곳에도 종적을 찾을 수 없다.

우리는 자주 역사적 실체나 그 본질적 원형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실제적 가치로만의 몰입보다는 금속활자를 만들겠다는 당시의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에 고무 찬양이 맞춰져야 한다.

그런 창조적 사고방식과 금속활자로 인해 파급된 인쇄문화의 혁명적 단초의 제공, 그리고 학습과 정보전달의 급속한 확산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초점을 모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2008 청주직지축제의 주제 '상상'은 더욱 돋보인다.

발달된 운송수단과 양식 기술의 독보적 진화를 통해 가을의 전설이 된 생선 전어는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거나 '깨가 가득한 머리'라는 해학적 이야기를 통해 풍부한 상상력을 자극하고, 그 상상력을 만든 이야기는 결국 전어로 돈을 버는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 아닌가.

이것이 바로 이야기, 즉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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