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산 이야기
지인의 산 이야기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9.05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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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규량의 산&삶 이야기
한 규 량 <충주대 노인보건복지과 교수>

여름방학때 큰 산 한번 가겠노라고 다짐했건만 삶이 그렇게 생각대로 되진 않았다.

지난달 중순 더위에 지친 몸을 우암산에 기대어 보려고 긴긴 해를 이용하여 저녁에 산을 올랐다. 늦은 시간이기도 하고 너무 더워서 그런지 평일엔 사람들이 보이질 않았다.

그런데 삼일공원 등산길 첫 관문도 채 오르기 전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낮엔 더워서 사람이 적고 해 질 녘이 되어 등산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였더니 신사복 차림의 남성들 댓 명이 호흡을 고르느라 헐떡이고 있었다.

매우 힘들게 구두 신고 올라온 신사들을 자세히 보아하니 필자의 지인들도 있었다. 회원 중의 한 사람이 간단히 우암산에 오른 뒤 식사를 하자는 제안을 하여 저녁모임의 사람들을 끌고 산에 올랐다는 것이다. 배가 나온 중년의 신사들을 제치고 우리 山女 일행들이 앞장서서 올라가니 천천히 물을 먹고 가자고 하였다. "등산 도중에는 물을 마시지 마라"는 설교()를 하여 '물' 금지를 시키고, 잠시 쉬면서 얘기를 하였는데 그 얘기는 곧 산 이야기로 이어졌다. 대학 청춘시절에 젊음 하나만으로 제주도 여행을 갔다가 등산 장비도 없이 한라산에 올랐다가 죽을 뻔한, 다음의 산 이야기가 으뜸이었다.

산 아래에선 날씨가 제법 좋아서 빨리 올라갔다가 해지기 전에 하산하자고 동의하여 올랐다. 제일 산을 잘 타는 내가 일찌감치 정상에 올랐다. 산 위쪽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기에 젖은 채로 올랐다. 많은 비가 속옷마저 다 적시고 땀과 비에 온몸은 식어가기 시작했다. 체온이 떨어지면서 하산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다리에 쥐가 나서 다리를 주무르다 보니 이젠 팔과 몸이 전체적으로 경련이 일어났다. 동료는 아직 올라오지도 않았는데 여기서 혼자 죽게 되나 생각을 하며 바위 아래서 간신히 비를 피하고 있었다.

그때 동료 3명이 비에 젖은 채 올라오는 것이 발견됐다. 겨우 소리를 질러 동료와 만나, 붙잡고 비 눈물을 흘렸다. 동료도 얼굴이 하얗게 된 채 친구를 찾기 위해 올라왔던 것이었다. 우리 4명은 어깨동무를 해 최대한 몸을 붙여서 체온유지를 했고 좁은 길에선 둘씩 짝지어 내려갔다. 체온손실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경험을 한 뒤로 큰 산은 장비 없이 시작해선 안 됨을 알았다.

등산 장비 중 고어텍스 점퍼가 중요하다는 것을 지난 장비 편에서 말했지만, 다시 한번 강조한다. 고산일 경우 땀이 난 후 마를 동안의 저체온을 방지하기 위한 보온점퍼 역시 필요하다. 저산소, 저체온에 대비한 장비 및 체력을 갖추고 나서 떠나야만 한다.

지인의 산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현명한 대처에 박수를 보낸다. 등산에 대한 예비지식은 없었지만 지혜롭게 저체온을 극복하여 살아 돌아온 것이다.

초원의 나라 몽골인의 겨울나기에도 보면 목장주인이 가축들을 우리에 빼곡히 가두어 놓아 동물들끼리 체온유지를 하도록 한다. 그래야만 혹독한 추위에도 얼어 죽지 않고 겨울을 지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체온 유지는 생명의 유지와도 같다. 아마추어가 원정을 떠날 때는 산에서의 저체온에 대비한 점검이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다. 산 위에서의 날씨는 산 아래에서의 날씨와는 전혀 다를 수가 있다. 날씨가 아무리 좋아도 산 위에선 비 또는 눈이 올 수도 있고 바람이 몰아칠 수도 있다. 만약의 경우 최악의 경우까지도 미리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또 포기할 수도 있어야 한다. 무조건 정상 정복을 고집해선 안 된다.

그런데 산에 오래 다녀본 사람은 산과 교감을 할 줄 알기에 자연스럽게 그 정도는 파악할 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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