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당진 삼월리 회화나무 <천연기념물 제317호>
16. 당진 삼월리 회화나무 <천연기념물 제317호>
  • 연숙자 기자
  • 승인 2008.09.05 0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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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의 천연기념물 그 천혜의 비상

모진 풍상 이겨낸 푸른 기개 감동

수령 500년 괴목… 조선조 이행 식재 자손 번영 기원
덕수 이씨 문중과 고락… 현재 마을 수호수 역할 톡톡
8월엔 흰색 꽃 절정… 열매 꼬투리 염주알 모양 특징


천연기념물 당진삼월리 회화나무는 수령이 약 500년 된 괴목으로 덕수 이씨 문중과 고락을 같이하며 살아온 정원수다. 삼각형을 이룬 수형이 든든한 기둥처럼 안정감을 주는 이 나무는 조선조 중종 때 좌의정을 지낸 이행이 낙향해 자손의 번영을 기원하며 심었다고 전해진다.
 
 

충남 당진군 송산면 삼월리 봉화산 아래 남쪽 마을 입구에는 유구한 역사를 딛고 장쾌하게 서 있는 회화나무가 있다.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처럼 우뚝 서서 500년 풍상을 이겨낸 나무는 멀리서 보면 마을을 품에 안은 듯한 느낌을 준다. 주변에 표지판 하나 없어도 스스로 이정표가 되고 있는 회화나무는 논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갈수록 자유분방한 필치로 그려낸 듯 나무의 선과 넉넉한 품, 그리고 웅장한 기개를 안겨줬다.
 세월을 이겨내지 못하고 곳곳에 상흔을 드러내고 있는 창덕궁과 해미읍성에서 보았던 회화나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푸른 잎을 가지마다 달고 하늘을 향해 뻗어가는 모습은 당당해 보이기까지 했다. 예로부터 귀한 대접을 받아온 나무이기에 그 내력이 그대로 수형이 나타나는 것 아닌가 싶었다.


 양반가나 사찰 등에서 자란 나무가 시골 마을의 터줏대감으로 자리잡기까지는 이행과의 인연에서 비롯됐다. 조선 중종 때 좌의정을 지낸 이행이 당시 폐비 신씨의 복원 문제로 사림파와 대립하자 1517년 벼슬을 버리고 낙향, 이곳에 집을 짓고 회화나무를 심었던 것이다. 세속을 훌훌 털어버리고 고향을 찾은 이행은 그 많은 나무 중 왜 하필 회화나무를 정원수로 심었을까. 이는 학자수 또는 행복수라고도 부르는 이름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중국에서 길상목으로 알려진 나무는 우리나라 궁궐에 심으며 각광받기 시작했다.

특히 주나라 재상의 자리를 표시하는 나무로 사용되면서 회화나무 세 그루를 마당에 심으면 학자와 같은 큰 인물이 나고 집안에 복을 가져온다는 설로 점차 대갓집 정원수로 심어졌다. 이런 연유는 훗날 고관들의 관직과 집안의 품격을 나타내는 상징이 되기도 했다. 좌의정 이행 역시 정치를 등지고 낙향하면서도 자손이 잘되기를 소망하며 회화나무를 심었던 것이다.
 이렇게 이행에 의해 심어진 나무는 덕수 이씨 문중과 깊은 인연을 맺으며 문중의 역사로 자리잡게 된다. 비록 지금은 집주인도 바뀌고 담장 밖으로 밀려나 마을 정자가 되었지만, 양반집 정원수로 자손이 잘되길 바라는 문중의 염원을 담고 살아온 500년은 세월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당진 삼월리로 시집온 지 51년째라는 성필호(71) 할머니는 "10년 전 이 집으로 이사와 살고 있지만, 이전에는 덕수 이씨 선조가 낙향해 8대가 살아온 집”이라며 “도시로 나가면서 덕수 이씨 자손이 살진 않지만 마을 뒤 봉화산 능안에는 30여기에 이르는 덕수 이씨 선조의 묘소가 모셔져 있다”고 들려줬다.

 할머니는 시멘트 담장을 훌쩍 뛰어넘어 지붕 위로 초록 그늘을 드리운 회화나무를 바라보며 “꽃이 피는 8월이면 가지마다 하얀 꽃을 피워 마을은 온통 달콤한 향기로 가득하다”면서 “꽃이 질 때면 마치 겨울눈처럼 하얗게 마당에 떨어져 마치 꽃눈 같다”며 고운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 마을에서 사람 구경하기조차 어렵다는 할머니는 “옛날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떡 해놓고 제사지내며 마을과 집안이 잘되게 해달라고 기원도 했다”고 말하고 “마을 사람들이 저녁 먹고 둘러앉아 멍석과 구럭도 만들고 새끼도 꼬면서 두런두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눴다”며 지난날의 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병들어 가지치기도 한 적 있고, 오래된 나무가 그렇듯이 속은 비어 있다”면서 “군에서 밑동에 두엄을 주고 건강하게 자라도록 관리를 하고 있지만 오래도록 마을을 지켜주며 건강하게 자라길” 기원했다.


 할머니의 소망처럼 누군가의 작은 소망을 줄줄이 매달고 가을 열매로 익어가고 있는 회화나무는 500년의 시간을 그렇게 묵묵히 지켜보고 자랐을 것이다. 땅 밑으로 길게 뿌리내리고 단단하게 세월을 지탱하고 있는 말없는 모습에서 사람과 사람의 인연을 생각해 본다.
 

 
 *회화나무
 우리나라 영남지방에서 많이 자라는 이 나무는 잎이 아카시아잎과 흡사하다. 봄꽃이 지고 나면 8월 무더위 속에 흰색의 꽃을 피워 은은한 향기를 자랑한다. 풀풀 날리는 듯 피어나는 꽃 외에도 이 나무의 특징은 열매의 꼬투리가 마치 염주알처럼 생겨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동글동글 이어진 열매 형태는 회화나무에서만 볼 수 있다.
 회화나무는 느티나무와 함께 괴목이라고 칭하는데, 학자수, 행복수라는 명칭 외에도 괴화수라고도 부른다. 추위와 병충해, 공해에도 강해 공원이나 가로수로 많이 심고 있다.

회화나무 꽃
회화나무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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