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개혁하려면 낙하산부터 없애야
공기업 개혁하려면 낙하산부터 없애야
  • 권혁두 기자
  • 승인 2008.07.25 22: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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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권 혁 두 부국장 <영동>

주기적으로 혹은 연례적으로 국민을 열받게하는 문제중의 하나가 공기업 비리다. 정부는 그 때마다 개혁과 발본색원을 외쳤지만 근절은 커녕 갈수록 저질적으로 지능화한다는 점에서 불가사의이기도 하다. '신이 내린 직장'이 '신도 부러워하는 직장'으로 업그레이드된지 오래다.

감사원이 최근 발표한 31개 공기업 비리와 국회에서 공개된 공기업 탈세 실태 역시 우리의 어안을 벙벙하게 한다. 거래업체로부터 돈을 거둬 골프모임을 벌인 것은 식상한 수준이고 특정인을 신입사원으로 뽑기 위해 시험성적까지 조작한 대목에서는 혀를 차지 않을 수 없다. 비리의 규모도 갈수록 눈덩이다. 투자한 건설회사가 부도가 나자 허위로 문서를 만들어 혈세 2000억원을 지원해준 공기업도 있었다.

한나라당 의원이 공기업 민영화가 논란이 되는 시점에 공개한 자료라는 점이 석연찮기는 하지만 공공기관의 탈세행태도 상상을 불허한다. 2003∼2007년 사이 주택공사는 자회사에 평균낙찰가보다 높은 가격의 공사대금을 지급하고 규정 금리보다 훨씬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줘 60억여원을 추징당했다.

한전과 가스공사도 자회사에 용역대금과 공사비를 펑펑 퍼줬다가 수십억원씩을 추징당했다. 기부금 영수증을 허위로 작성해 부당공제를 받고 접대비 한도를 초과해 사용한 공사도 적지 않았다. 장기근속자에게 실행하지도 않은 해외 벤치마킹 교육비를 지급하고 직원들에게 이자없이 주택자금을 빌려주기도 했다.

이 기간에 세무조사를 받은 82개 공공기관이 탈세혐의로 추징당한 세금은 1조 1003억원에 달한다. 한곳당 평균 134억원으로 비슷한 기간에 세무조사를 받은 일반 법인사업자 2만7400여곳의 평균 추징액 4억9000만원의 27배가 넘는 액수다. 매년 20조원에 달하는 예산을 국고에서 지원받는 공기업들이 예산 나눠먹기에서 벗어나 세금 도둑질까지 하고 있으니 이러고도 정부가 민간에 성실납세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이지 의문이다.

공기업 비리가 고질병에서 불치병으로 악화되는 것엔 임원들이 낙하산을 타고 부임하는 관행 탓이 크다. 권력의 배려를 받은 임원들이 포진한 공공기관에 대해 정부의 감독과 감사가 엄정하게 집행될리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요즘에는 낙하산 인사를 오히려 환영하는 기관도 등장한다.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문외한이더라도 외풍으로부터 조직을 보호해줄 실세가 오면 그만이라는 생각들이다.

최근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에 내정된 정형근 전 한나라당 의원의 경우도 그렇다. 생뚱맞게 현 정권과 코드를 맞추고 있는 보수단체들이 공단 앞에서 낙하산 인사 철회하라며 피킷시위를 펼치기도 했으나 정작 공단 내부나 노조에서는 일언반구가 없다. 내심 반기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에 임명된 안택수 전 한나라당 의원도 아무런 저항없이 입성했다. 통폐합과 구조조정으로부터 조직을 구해낼 적격자로 평가돼 오히려 환영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언론은 안 전의원이 전 정권의 낙하산 인사를 비난했던 전력을 빗대 '낙하산 저격수가 낙하산을 탔다'고 비아냥대기도 했다.

정부는 개혁의 적임자라며 낙하산을 내려보낼지 모르지만 조직에 대한 무지상태에서 부임한 임원들은 조직의 내부 논리에 쉽게 동화돼 외부에서 제기되는 개혁논리의 방패막이로 전락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공조직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갈수록 심해지는 비리와 변칙을 근절하려면 공기업 임원 인선관행부터 쇄신해야 한다. 공기업은 낙하산을 용인하고, 낙하산은 권력의 후광을 앞세워 조직의 이익을 대변하는 담합이 또 다른 관행으로 뿌리내리지 않을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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