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가 우리에게 주는 매력
부채가 우리에게 주는 매력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7.03 22: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사발언대
류 시 호 <음성 대소초>

"선생님, 너무 더워요 우리 선풍기 좀 틀면 안 될까요."

체육을 하고 들어온 개구쟁이 종민이의 장난기 섞인 말이다. 아직 학교에서는 가능한 전기료 절약을 위해 가동을 억제하고 있다.

쉬는 시간이나 체육시간 후 아이들은 선풍기나 에어컨을 선호하고 있지만 에어컨은 몇 군데밖에 없다. 여름을 보내려면 아이들은 각자가 집에서 생수병을 얼려서 들고 다닌다.

정작 가능한 얼음물이나 아이스크림 대신에 아이들 열기로 가득 찬 교실에서 뜨거운 녹차나 커피를 마시며 부채를 사용할 때가 많다. 어쩌면 냉방병도 피할 수 있고, 뜨거운 차 한잔에 이열치열을 느끼며 느긋하게 하는 부채바람이 기분이 좋다. 여름철 여행을 하다 보면 선풍기도 에어컨도 없는 곳에서 부채를 사용할 때가 많다. 오래전 동료직원이 대만 여행을 갔다가 향기 나는 부채를 사줘서 해마다 끄집어내 향도 맡으며 더위를 날리는 시늉을 하는데 참 좋다.

몇년전에는 뜨거운 여름, 중국 북경을 여행하며 부채를 많이 사 와서 친구들에게 나눠준 적이 있는데, 부채는 우리나라도 다양하게 만든다. 임금님이 행차때 쓰는 의장선, 궁중에서 왕비나 공주가 혼례 때 가리는 진주선, 여덟가지 덕을 본다고 해서 팔덕선, 부챗살과 갓대를 껍질과 껍질끼리 합하여 만든 합죽선, 파초선, 태극선, 공작선 등 100여 가지가 있다.

그런데 부채에 얽힌 이야기를 보면 재미를 더 하는데 국문학자 간호윤씨가 풀어쓴 '기인기사' 책을 보면 조선시대, 10여년간 홀아비로 지내던 양희수가 함경도 지방을 지나다 농사꾼의 집에 들렀는데, 혼자 있던 열세살짜리 낭자가 뜻밖에 정갈한 솜씨로 식사대접을 하자 그는 청홍 부채 두자루를 주며 "이 부채를 너에게 채단으로 주려는데 받겠느냐"하고 농담을 건넸다. 2년뒤 소녀의 아비가 그를 찾아와 딸이 폐백을 받았으니 정혼한 것과 다름없다며 소실되기를 자청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슬기롭게 집안을 꾸려나갔고 아들 둘을 잇달아 낳았는데, 그중 한 명이 조선의 명필 양사언이었다.

중국의 경우 부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 서유기의 삼장법사 일행이 불길에 싸인 화염산에 있을 때 손오공이 철선공주에게 생떼를 써 파초선을 빌려 불길을 잡은 후 잇따라 49번을 부채질해 화염산의 불씨를 완전히 없애버리고 세찬 비를 뿌렸다고 하니 대단하다.

중국소설 금병매에서는 바람둥이 서문경은 당시 사천지방에서 생산되던 명품인 '금박 사천부채'를 들고 여성들을 희롱하고 기녀 이계저는 서문경과 함께 놀면서 소매에서 춘화가 그려져 있는 부채인 춘선으로 사랑을 속삭였다니 부채가 주는 매력일까.

그런가 하면 홍콩이나 마카오 지역에서는 부채를 펴서 얼굴의 아래 부분을 가리면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뜻이고, 부채 손잡이로 입술을 두드리면 '키스해 주세요', 부채를 열었다 닫았다 하면 '나는 당신을 몹시 그리워하고 있습니다'라는 뜻이라 하니 매우 운치가 있다.

이렇게 옛날 조상은 예술과 삶에 깃든 '부채에서 운치'를 읽어 냈다는데, 중년을 보내며 살다 보니 가을 부채처럼 버려지거나, 허허벌판에 홀로 선 듯 쓸쓸하고 답답할 때가 있다. 또한 요즘 시대는 삭막하고 막막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누구나 세계를 누비며 정보화 시대에 바쁘게 살지만,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세 마디만 잘 해도 갈등이나 오해를 풀 수 있을 터인데, 옛 선인들처럼 부채의 매력과 운치를 생각하고, 우리 서로 마음의 부채를 부쳐주면서 살면 어떨까.

신이 인간에게 베푼 가장 큰 축복이 '웃음'이라고 하는데 갈등도 오해도 뜻대로 안 풀릴 때 눈물이 나올 때까지 실컷 웃어보자. 부채의 신선한 바람처럼 용해가 될 터이니.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