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속리천의 이름으로 ②
<8> 속리천의 이름으로 ②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6.25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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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래강의 숨결
◈ 절경 중의 절경 달래강 유일의 아치형 다리인 상원평교가 인근 경치와 어울어져 멋진 수채화 전시회를 열고 있다. 자연의 미와 인공의 미가 만나 탄생시킨 한 폭의 수채화가 감탄사를 연발케 한다. 도심속 그 어떤 갤러리에서 이처럼 멋진 그림을 만날 수 있을까. 카메라 뷰파인더를 통해 보이는 풍경은 말 그대로 극치다.

곳곳 절경… 가는 곳마다 수채화 갤러리

김성식 생태전문기자 <프리랜서>
이상덕기자


예년보다 이른 장마가 갈 길 먼 나그네의 발목을 잡는다. 후텁지근한 날씨로 온 몸이 축 늘어지는 것도 그렇지만 습기와 물안개로 카메라의 시야가 영 좋질 않다. 하지만 어쩌랴. 산이 있기에 산을 오르는 산사람처럼 달래강이 있기에 달래강을 찾게된 나그네도 잠시 발길을 멈추고 비가 걷히길 기다릴 뿐이다.

장마전선이 소강상태로 접어든 틈을 타 다시 물길을 따라 나서니 강물이 꽤나 불었다. 이번 첫 장마는 달래강 유역엔 무척 반가운 단비다. 줄어든 강물과 급격한 일교차로 그간 알 낳기를 미뤄온 물고기 식구들에겐 대내림 할 기회를 준 생명의 비요, 대지가 타들어 가는 바람에 농작물이 크지 않아 걱정하던 농부들에겐 모처럼 만에 한숨 돌리고 막걸리라도 한 잔 들이키게 해준 효자 비다.

냇가를 찾아온 해오라기며 백로, 왜가리, 물총새의 날갯짓도 전에 비해 경쾌하다. 보은군 산외면 백석1교서 장갑리 본말을 끼고 오른쪽으로 굽이치는 물길을 따라 둑방길로 들어서니 들풀들도 생기발랄하다. 논의 벼들도, 논둑의 콩들도 이제서야 제빛을 찾았다.

자잘한 물방울이 영롱히 맺힌 메꽃을 보니 마치 머리를 감고 욕실에서 막 나온 아낙 같다. 앙증맞은 토끼풀의 수줍음에서 그 옛날 소꿉친구들의 얼굴이 오버랩되어 스쳐 지나간다.

장갑교를 지나 원평리 관광휴양지를 향해 들어서자 삼부평교 아래로 자연하천이 옛 모습 그대로다. 달뿌리풀이 군락을 이룬 사이사이로 물길이 트이고 물머리는 가볍게 꼬리치며 여울진다. 여울이 끝날 즈음에서 먹이잡이에 여념없던 흰뺨검둥오리 가족이 나그네의 발길에 놀라 재빨리 풀숲으로 숨어든다. 어미 뒤를 따르는 새끼오리들의 모습이 술래에게 들킨 어린아이처럼 허겁지겁이다.

여울이 끝난 하천 저 편엔 수십길 낭떠러지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살짝 튼 하천 폭은 몇 배로 넓어진다. 이곳이 원평 관광휴양지다. 큰 돌로 다시 쌓은 제방과 아직도 굴삭기의 이빨 자국이 선명한 하천바닥에서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긴다. 조금 전의 자연하천 모습과는 판이하다.

하지만 그런 인상은 잠시뿐 휴양지 아래 마을 초입으로 눈길을 돌리니 별천지다. 달래강 유일의 아치형 다리인 상원평교가 인근 경치와 어울어져 멋진 수채화 전시회를 열고 있다. 자연의 미와 인공의 미가 만나 어쩜 저렇게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기막힌 절경이다. 다리의 위·아래, 좌·우 어디서 보아도 절묘하긴 마찬가지다. 도심의 그 어떤 갤러리에서 이처럼 멋진 그림을 만날 수 있을까. 카메라 뷰파인더를 통해 보이는 풍경은 말 그대로 극치다.

그림 감상에 젖어 넋 나간 듯 카메라 셔터 누르길 두어 시간. 그러고도 미련이 남아 마지막으로 두 세컷 더 찍는다고 절벽 쪽으로 가서 물가의 바위 위로 건너뛴다는 게 아뿔사 독사가 일광욕을 하고 있는 곳 바로 옆이 아닌가. 화들짝 놀라 한 1미터 가량을 껑충 뛰니 독사도 덩달아 물로 뛴다. 독사가 얼마나 놀랐으면 물로 투신하듯 뛰어들었을까. 두근거리는 마음을 쓴 웃음으로 진정시키고는 서둘러 발길을 돌리려는데 설익은 개암이 낯익은 얼굴로 나 좀 보란다.

원평리 마을을 막 벗어날 즈음 길 옆으로 담배밭이 사열하듯 넓다랗게 펼쳐진다. 중간 중간 피어있는 담배꽃이 반가워 오랜만에 밭고랑으로 접어드는데 끈적끈적한 담뱃진이 잊혀졌던 옛 향수를 부추기며 묻어나온다. 아, 담배향. 그리고 땀냄새. 어릴 적 고향 냄새다. 속리천이 지나는 보은군 산외면 지역에서는 아직도 잎담배 농사가 많이 이뤄지고 대추,사과,고추 농가도 많다.

속리산 상판리에서 산외면 오대리로 이어지는 도로변엔 살구나무가 가로수로 심겨있다. 아직은 덜 익은 푸른 살구가 입안에 잔뜩 침을 고이게 한다. 신침을 몇 모금 삼키며 도착한 오대 마을 입구에 마을 유래비가 서있고 그 옆으로 오대교가 반긴다. 오대교 밑으론 자연하천이 잘 보존된 채 산대리를 향해 줄달음 치며 길게 늘어선다.

이어 만나는 산대리는 '산 속에 터가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4백여년 전 능성 구씨가 정자를 짓고 살면서 마을이 형성됐다고 하는데 현재 마을 입구엔 4백년 된 느티나무와 정자각, 마을유래비가 두 장승의 호위를 받으며 서 있다.

오대 마을 아래의 길탕리는 길골과 탕골이 합쳐진 마을로 속리천(달래강)이 동네 앞을 역S자형으로 굽이치며 또 다시 멋진 장관을 연출한다. 특히 길탕교 부근은 바위로 된 인근 산자락을 강물이 오랜 세월 깎아내려 커다란 소를 이루는데 맑고 푸른 강물속에 마치 기와장을 옆으로 세워놓은 듯한 강바닥이 무척 인상적이다.

◈ 길탕리 물굽이 보은군 산외면 길탕교 부근은 바위로 된 인근 산자락을 강물이 오랜 세월 깎아내려 커다란 소를 이루는데 맑고 푸른 강물속에 마치 기와장을 옆으로 세워놓은 듯한 강바닥이 무척 인상적이다.

산 허리를 잘라 다릿발을 세운 길탕교 위로 발걸음을 돌리려는데 산 위 송신탑에 지어진 까치집에서 갑자기 요란한 소리가 들린다. '꽤꽤꽤꽥 딱다닥딱' 날카롭게 이어지는 소리가 영락없는 파랑새 소리다. 희망을 상징하는 새이지만 애써 집 짓지 않고 빈 까치둥지 골라 주로 새끼 까고 텃새가 심해 다른 새나 사람이 둥지 가까이 지나가기만 해도 독특한 경계음을 내며 달려드는 심통많은 새다.

벼락같은 파랑새 소리를 뒤로 하고 고개를 넘어서니 중티리다. 마을회관 앞을 지나 왼쪽으로 접어들자 하천변에 보은-내북간 도로 공사장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굴다리를 건너 중티교에 올라서자 길탕리에서 한바탕 휘돌아 흘러내려온 속리천이 먼저 와있다. 중티교를 지난 속리천은 잔 여울을 이루며 이식보(洑)로 흘러들어 큰 물길을 이룬다. 이식보는 오래전부터 인근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대주는 젖줄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내린 비로 물이 불어 흘러넘치면서 멋진 광경을 재연한다.

둑방길을 빠져나와 이식삼거리를 지나니 이식마을이 코 앞이다. 이식리(梨息里)의 옛 지명은 주식포(舟息浦) 혹은 주포(舟浦)였는데 예전 배가 다니던 시절 배가 쉬어가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지금의 물길을 바라보며 이곳으로 배가 다녔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믿기질 않는다.

달래강 변엔 절경 뿐만 아니라 옛 고향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숱한 추억거리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엉겅퀴 (왼쪽) , 개암 (오른쪽 위), 담배 (오른쪽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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