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와 고구마 그리고 이모님
석류와 고구마 그리고 이모님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5.23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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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류 시 호 <음성 대소초 교사>

얼마전 시골 초등학교 동창회에 가는 길에 부모님 산소에 성묘도 하고, 가까운 일가친지들도 뵐 겸 고향 땅을 밟았다. 이번 고향 방문길에는 큰아들 결혼식을 축하해 준 고향 친구, 일가, 친지들께 감사의 마음으로 골고루 찾아보았다.

동창회 참석 후 제일 먼저 방문한 곳은 이모님 댁으로 "이모님,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여든이 넘은 이모님을 몇 년 만에 뵈오니 무척 수척하셨다. 얼마전에는 이모님 큰아들이며 나보다 동생인 기철이를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낸 후 마음 아파하며 살고 계신다.

어머니 형제들이 많았지만 생존해 계시는 분은 기철이 어머니 한 분이기에 이모님을 만나면 일찍이 별세한 나의 어머니가 생각나고 안타까운 연민의 정이 더 남는다.

어릴적 휴일이나 방학을 하면 20여리를 걸어 농사를 많이 짓는 기철네 이모님 댁에 놀러가는 게 큰 여행이었다. 이모님 댁 뒤뜰에는 석류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가을이면 석류가 주렁주렁 열렸다.

요즘이야 수입 석류가 흔하지만 그때는 귀한 석류가 어린 마음에 무척 먹고 싶었고, 이모님한테 몇개 얻어 집에 갖고 와서 자랑하던 기억이 난다.

얼마전 터키를 여행하며 상큼한 맛이 유혹을 하는 큼직한 석류를 몇 개 샀다.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며 여행 중인 동료와 석류를 나눠 먹었다. 이번에 이모님댁에 가서 보니 아직도 석류나무가 살아 있었다. 그러나 그 때의 석류나무와 이모님 모두가 점점 늙고 병들어 가고 있었다.

필자는 석류와 더불어 고구마에 대한 추억이 있다. 소죽을 끓이며 이모부님이 구워 주시는 군고구마 맛에 얽힌 이종 사촌 동생들과의 추억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시골이기에 고구마 한 자루 얻어 집에 오면 겨우내 구워먹고, 쪄먹는게 고작이었지만 그때는 좋은 간식이었다.

그 시절 어른들은 지금과는 달리 고구마가 이른 봄 보릿고개에 허기진 배를 채우는 구황식품이었고, 고구마 두세 개를 먹으면 배가 든든해 한나절은 끄떡없이 버틸 수 있었기에 서민들은 고구마를 곡식 못지않게 귀히 여긴 것 같다.

중남미가 원산지인 고구마는 스페인을 통해 필리핀으로 상륙했고, 이어 중국을 거쳐 일본에 건너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구마라는 말은 '효행'이라는 뜻을 내포한 일본어 '고귀이모'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지는데 고구마가 원래 뜻을 찾아 인간에게 제대로 효행을 하는 식물로 진가를 발휘하는 것 같다.

요즘 아침 식사를 고구마나 감자, 옥수수, 모닝 빵 등으로 바꿔가며 한다. 양배추, 브로콜리, 양상추 등과 곁들이면 건강식으로 부담도 없고 좋은데, 고구마를 주식으로 하는 날이면 왠지 이모님 댁 고구마 생각을 하기도 한다.

최근 중국대륙의 사막화가 급속히 진전되면서 황사가 우리 축산농가는 물론 환경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있어 그 타개책으로 고구마 개발을 착안했다고 한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사막과 고원에서도 자랄 수 있는 고구마개발을 끝냈다고 하니 앞으로 시험재배의 과정을 거쳐 고비사막과 중국대륙에 고구마를 심어 황사를 줄였으면 한다.

고향 방문을 하며 이모님 댁에 들렀을 때, 어린 시절 석류와 고구마에 대한 추억을 아련히 떠올리는 것은 고향친구들과 일가, 친척 등에 대한 배려와 봉사, 자신을 되돌아보는 멋진 삶일까.

또한 우리가 개발한 고구마가 중국인들에게는 황사를 줄이고, 수익성을 높이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올릴 수 있다면 우리나라와 중국 간의 멋진 윈-윈 정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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