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 문백전선 이상있다
219. 문백전선 이상있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5.19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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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보무사<534>
글 리징 이 상 훈

"금화를 줄테니 왕비님 동생 신풍을 잘 구슬려 보게나"

"악몽(惡夢)이라니 그럼 혹시 그 아이의."

염치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아내를 쳐다보았다.

"그래요. 그 싸가지 없이 키가 큰 년이 나를 궁 안으로 불러다놓고 여러 부인네들과 함께 나란히 세워놓은 다음 내게 다가오더니 시뻘겋게 달군 불인두로 내게 막 갖다 대려고 하잖아요 제가 그걸 이리저리 피하느라 죽을 고생을 다하다가 마침 꿈을 깬 거라고요."

염치 아내는 아직도 그 악몽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 하는 듯 부들부들 몸을 떨며 말했다.

"어허! 그거 참."

아내의 말을 듣자 염치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 사실 염치로서도 요즘 가시방석에 앉아 지내는 기분이나 마찬가지였다. 모든 것들이 그저 불안하게만 보였고, 심지어 길가다가 우연히 발에 차이는 돌덩어리조차도 어느 누가 자기를 해코지하기 위해 일부러 갖다놓은 건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여보!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이러다가 내가 바싹 말라 죽고 말지. 어서 빨리 결정을 내려요. 우리 가족 모두 이곳을 빠져나가던가 아니면 그년에게 잡혀서 더럽고 추잡한 꼴을 당하며 죽느니 차라리 깨끗이 목을 매어 자살을 먼저 해버리던가."

"어허! 부인! 대체 그게 무슨 망발의 소리요 우리가 왜 자살을 해"

염치가 깜작 놀라 언성을 크게 높이며 자기 아내를 꾸짖었다.

"쉬잇! 애들이 잠에서 깨겠어요. 여보! 아무튼 이건 억지로 꾹꾹 참아 두거나 오래 끌 만한 일은 아닐 것 같아요. 그 악독한 계집에게 당하기 전에 우리가 우리 살길을 찾자고요."

염치 아내는 이렇게 말하며 조그만 자기 남편을 꼭 끌어안아 주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호위무관 장산을 찾아간 염치는 요즘 수신 왕비와 죽이 잘 맞는 자들이 속창 이외에 어느 누가 또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장산은 즉시 대답해 주었다.

"왕비님께서는 어렸을 적 소꿉장난하며 살았다는 옛 친구 분들을 모두 찾아내시어 요즘 그들을 궁 안으로 불러들여가지고 순대요리를 함께 배우시는 중입니다. 신풍, 해정, 백자, 발산 등등의 이름을 가진 자들이온데 그들 가운데 특히 '신풍'이라는 자는 알고 보니 수신왕비님의 바로 손아래 남동생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그 형제들은 뿔뿔이 모두 흩어지게 되었는데 저 멀리 '한벌성'에 종으로 팔려갔던 남동생 '신풍'을 왕비님께서 여러 수소문을 한 끝에 최근에야 알고 찾아와 호강을 시켜주고 있습지요. 그러니 '신풍'이야 말로 왕비님과 혈연으로 맺어있는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마침 잘 됐네. 내 이걸 줄 터이니 자네가 무슨 수단과 방법을 다 써서라도 왕비님의 친동생 신풍을 잘 구슬려 가지고 이러저러한 말이 왕비님의 귀에 쏙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게나."

염치는 이렇게 말하며 미리 준비해 갖고 간 금화 꾸러미를 장산에게 통째로 건네주었다.

"으응 아, 아니 이렇게나 많이 주십니까요 괜찮습니다. 제가 이런 걸 받으면 너무 부담스러워가지고서리."

갑자기 입이 함지박만큼이나 크게 벌어진 장산은 염치가 건네준 금화꾸러미를 되돌려주려는 척 했지만 염치는 한사코 받지 않았다. 사실 지금 이 금화꾸러미는 자기 친구 온양과 탕정이 이곳 병천국을 몰래 도망치면서 남겨주고 간 것이니 염치 자신으로서는 크게 아쉽다거나 손해날 것도 없었다.

염치가 돌아가고 나자 장산은 그가 부탁한 일을 즉시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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