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이미 혼돈의 세계에 살고 있다
우린 이미 혼돈의 세계에 살고 있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5.06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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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기자의 생태풍자
김 성 식 생태전문기자 <프리랜서>

철쭉꽃이 폈다. 그것도 흐드러지게 폈다. 대전, 청주 등 도회지 부근에선 이미 지난달 24일쯤 철쭉꽃이 폈고 속리산 뒷자락의 사담 계곡엔 28∼29일쯤부터 피기 시작했다.

철쭉꽃만이 아니다. 눈송이처럼 희게 피는 팥배나무꽃도 사담계곡에 흐드러지게 피어 제모습을 알리고 앙증맞고 기이한 모습의 매발톱꽃도 온통 꽃망울을 터트렸다.

문제다. 이들 꽃이 핀게 문제가 아니고 이르게 핀게 문제다. 혹자는 꽃 몇종 이르게 폈다고 뭐 그리 호들갑 떠나 할 지 모르지만 그게 아니다. 철쭉꽃과 팥배나무은 보통 5월 중순쯤에 핀다. 그런데 올해엔 4월 하순쯤 피기 시작했다. 매발톱꽃은 더하다. 보통 6∼7월쯤에 피지만 요즘 어딜가나 만개했다.

이미 진 꽃도 있다. 대개 5월 이후 꽃을 피우는 귀룽나무는 올해엔 4월 하순 꽃이 폈다 진 후 지금은 열매까지 맺혔다. 아그배도 꽃잎을 떨군 지 오래다. 왜 그럴까. 날씨 때문이다. 날씨가 하도 이상스러우니 꽃들마저 개화시기에 혼란이 온 것이다.

요즘 날씨를 보라. 5월초인데 낮기온은 벌써 한여름을 방불케 하고 아침 저녁으론 되레 썰렁하다. 봄과 한여름 날씨가 공존해서다. 어떨땐 수은주가 곤두박질쳐 극심한 일교차를 보인다.

얼마전엔 괴산, 보은 등 내륙지역에 엄청난 된서리가 내렸다.

올해엔 유난히 날씨가 변덕스럽다. 예년에 비해 무더위가 훨씬 이르게 찾아온 데다 두·세차례 썰렁한 날씨가 반복되면서 한여름인지 봄인지 종잡을 수 없게 하고 있다.

날씨가 이러니 생태달력인들 온전할 리 없다. 봄에는 봄꽃이, 여름엔 여름꽃이 펴야 정상적인 생태달력인데 봄꽃과 여름꽃이 한 데 핀다.

그 뿐만이 아니다. 생태계 곳곳에서 이상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모기와 병해충이 조기 출현하고 산란기를 맞은 물고기들이 알을 낳지 않고 방황()한다. 또 큰 일교차와 지난번 내린 된서리로 농축산물이 피해를 입었다.

이른바 '양봉철'이 왔어도 식물의 꽃에서 꿀이 적게 만들어지는 바람에 양봉업자들이 울상이다. 극심한 일교차 때문이다. 냉해가 더한 곳은 고추재배농가와 과수농가다. 애써 심은 어린 고추묘는 지난 된서리에 얼어죽거나 잎이 말라 다시 심어야 할 판이고 이제 막 꽃을 떨군 사과, 배, 복숭아는 어린 열매가 동해를 입어 과육이 기형으로 자라는 피해를 입게 됐다.

또 산란계를 키우는 양계농가에서는 때이른 무더위로 닭들이 먹이를 잘 먹지 않아 산란율이 크게 떨어졌다고 하소연이다. 가뜩이나 조류인플루엔자로 멍든 가슴 날씨로 인해 더욱더 찢어진단다.

기후는 변한다. 지구가 생긴 이래 지금까지 계속 변해왔고 앞으로도 변할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기후변화는 그 속도가 너무 빠르게 나타난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수백년 동안에 이뤄질 기후변화가 불과 몇십 년만에 나타나고 있고 그 속도는 점점더 빨라지고 있다. 생태계는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기후변화의 속도가 빠를수록 생태계는 갈팡질팡한다. 계절의 흐름과 밤낮의 길이를 감지하는 '생태시계'가 온전히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우이지만 동식물의 생태시계가 아예 고장나면 어떻게 될까. 여름철새와 겨울철새의 구분이 없고 각종 해충이 시도 때도 없이 들끓게 될 것이다.

생태계내의 계절적인 질서가 깨져 말 그대로 혼돈의 세계가 오게 된다.

현실은 어떤가. 봄과 여름은 물론 사계절의 경계가 모호해진 한반도. 그래서 봄꽃과 여름꽃이 함께 피고 여름철새인 백로,왜가리가 겨울에도 이동하지 않는 이상해진 생태계. 우린 지금 혼돈의 세계, 무질서의 세계에 이미 살고 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 심각성도 모른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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