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없는, 그러나 꼭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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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4.11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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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칼럼
오 희 진 <환경·생명 지키는 교사모임 회장>

봄이 거세게 밀어닥친다. 다른 해와 달리 올봄은 이미 오래 전에 와서 잠복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꽃샘추위랄 것도 없이 봄은 온 땅을 진지 삼아 매우 부드럽게 풀과 나무에 물기를 올렸다. 그리고 4월에 들어서자 화색춘풍의 기운을 일으켜 한꺼번에 인간의 도시를 점령했다. 모든 꽃들이 다 피어났다. 쉬이 보이는 것으로도 매화, 산수유, 개나리, 목련, 벚꽃에 진달래까지 도시의 가로와 공원, 그리고 아파트 단지에 꽃들이 지천을 이룬다.

땅 말고도 봄은 모든 것에 생명의 기운을 먹였다. 그렇게 집안에 보관한 감자에도 싹이 돋았다. 생각 끝에 그 감자를 땅에 심어 키워보기로 했다. 학교 울타리 한쪽 아래 빈 땅을 겨우 찾아 밭을 일궜다. 그리고 싹이 난 부분을 두어 조각으로 잘라내 일정한 간격으로 심고 흙을 얕게 덮었다. 머지않아 사방 1m쯤의 빈 땅이 십여 포기의 감자가 자라는 감자밭으로 변화할 날이 올 것이다.

나는 매일 그곳을 돌아보았다. 처음의 기대와 달리 감자는 여전히 싹이 올라올 조짐이 없다. 매일 한 번씩 가서 확인하지만 주변에 꽃다지가 꽃을 피울 뿐이다. 또 하루가 지나면 흙 속에 묻힌 다른 풀들이 어느새 파란 잎을 세우고 올라올 뿐이다. 하지만 나는 감자 싹이 올라오도록 무엇인가 해야 하니 이미 뿌리가 깊어진 그것들을 괜히 손가락으로 쥐고 뜯는 시늉을 낸다. 이미 봄은 다른 모든 것들을 꽃 피우는데 감자 싹이 올라오지 않으면 어쩌지. 나날이 기대는 줄어들고 걱정은 커간다.

그렇게 2주가 됐다. 그럴수록 다시 희망을 키워 나는 밭에 이른다. 밭은 어제와 같고 다른 변화가 없다. 실망만큼 더욱 눈에 뜻을 세워 밭을 살핀다. 아! 작은 탄성이 샌다. 감자 싹이 틀림없다. 재차 확인을 한다. 감자 싹이다. 마침내 흙 속에 묻힌 감자가 그 어두운 흙의 두께를 이기고 세상에 제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하나뿐이다. 다음 순간 발견한 싹 주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사방에 싹이 오른 것이 보인다. 놀라운 일이다. 이제껏 보이지 않던 감자의 자취를 하나의 싹에서 보고 다른 싹들을 쉽게 찾게 되다니.

처음 밭에 일정한 간격으로 감자 조각을 심고 흙을 덮으니 그 자리들이 돌연 사라지지 않았는가.

감자는 저 혼자 땅 속에서 솟아 환한 세상으로 올랐어도 거기에는 내 소망이 함께 했음을 안다. 더욱 감자는 저 혼자 어둠에서 힘껏 흙을 뚫었어도 사방 가까운 곳에 제 다른 감자 싹들이 동시에 흙을 밀어올렸음을 안다. 마침내 여기는 감자밭이 됐다. 내가 감자를 심고 감자밭이라 부를 때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감자 자신이 제 주체의 의지대로 생명의 욕망을 지상에 표상했으므로 그렇게 된 것이다. 감자 자신이 아니라면 여기를 감자밭이 되게 할 수 없다. 다행이다. 그리하여 감자를 심은 내가 다른 이에게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감자 자신이 스스로 그 생명의 자리를 이룸으로 나는 그 사실을 자랑한다. 교육 또한 그렇다. 총선 이후 더욱 기세등등할 시장화 교육으로 사라질지라도 꼭 있기 마련인 본질의 교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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