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크라시와 TV토론
텔레크라시와 TV토론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4.07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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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안 남 영 <HCN충북방송 총괄본부장>

"대통령의 나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나는 이번 선거에서 나이를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나는 상대가 너무 젊고 경험이 부족한 것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지난 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먼데일 후보와 레이건 대통령이 TV토론에서 나눈 유명한 대화 한 토막이다. 자기보다 17살이나 많은 레이건(당시 73세)의 건강을 은근히 꼬집으려는 먼데일의 전략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레이건은 1980년 선거에서도 카터를 한방에 날려 보냈다. "경기가 나쁘다는 것은 이웃집 사람이 실업자가 됐다는 것이고, 경기가 아주 나쁘다는 것(depession·불황)은 내가 실업자가 됐다는 것이고,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는 것은 경제를 망친 카터가 드디어 실업자가 됐다는 것이다"라는 말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토론의 달인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것이다.

TV토론과 관련 정치학 교재에도 나오는 '닉슨의 굴욕'도 있다. 스마트한 케네디에 비해 뭔가 불안한 모습으로 비쳐진 닉슨은 1960년 선거에서 맥 못 추고 패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 때부터 정치(선거)에서 TV는 주역이 된다.

이래서 나온 말이 '텔레크라시'다. 텔레비전(television)과 데모크라시(democracy)의 합성어로, TV가 민주주의적 소통의 중심에 서서 정치문화를 이끌고 있음을 의미한다. 정치는 어차피 소통의 과정이고 특히 선거의 경우 이제 토론회나 연설 등 TV같은 영상미디어를 빼놓고는 상상할 수 없게 됐다. 그만큼 TV는 참여민주주의의 유력한 도구로 자리 잡았으며 그래서 미디어정치는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1990년대 들어 보편화하기 시작한 후보초청 TV토론은 이미 정치의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깨는 대안으로 떠올랐다.

더구나 질의응답식으로 진행되는 토론은 예전의 일방적 유세와는 달리 자질검증에서 훨씬 입체적이다. 이처럼 TV토론은 오프라인의 '광장정치'를 온라인 '안방정치'로 전환시켰다고 평가받고 있다.

물론 TV토론의 폐해가 없는 것도 아니다. 양방향 소통이라는 의미보다 상품 고르기, 인기투표와 같이 변질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이른바 개인적 인기나 외모가 표를 결정하는 '이미지 정치'를 심화시킬 개연성이 충분하다.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미디어정치는 이제 피해갈 수 없다.

따라서 정치를 하려면 토론에 대한 기본 소양과 논리적 언어구사 능력 등을 최소한 갖춰야 한다. 적어도 선거로 공인이 되겠다면 누구나 대중 앞에 나서는 것처럼 알몸으로 서는 기분이라도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을 마다해서는 안된다. 그리하여 자신을 드러내 검증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정치인들 중에는 TV토론을 꺼리는 사람이 있다. 2년전 지방선거에서 HCN이 처음으로 시의원 후보 대상으로 진행한 토론회에서 일부 후보들이 불참했는데 (낮시간에 열리는데도)어머니 제사라서, 바빠서라는 등의 이유를 댔다. 이번에는 이용희 후보와 김경회 후보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빠졌다. 사실 방송사, 신문사, 단체 등이 마련한 토론회는 지역구별로 6∼7회씩 되다 보니 후보들 고충도 이해 간다. 그러나 이들 후보는 토론회 참석이 감표요인으로 작용할까봐 불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영호남에선 의원 배지가 떼 논 당상인 후보들이 다수 불참했다고 한다. 당당하지 못한 일이다. 사실 정치인들은 평균 이상의 말재주를 가진 사람이다. 또 남을 설득해야 하는 직업상 그래야 할 것이다. 미국의 엘 고어가 8년 전 어눌한 부시를 압도하지 못한 것처럼 말 잘하는 게 오히려 감점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언변에 자신이 없거나 집중공격을 당하더라도 후보 검증 기회를 회피하는 건 비겁하다.

이제 대학에서도 토론을 가르치는 과목이 '스피치', '대인커뮤니케이션', '실용화법' 등의 이름으로 다수 운영된다. 그러나 토론문화의 성숙을 논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선거토론을 기피하는 후보가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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