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팎이 다른 여인들
안팎이 다른 여인들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4.04.28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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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나는 누나가 둘이다. 그 당시에는 남녀 사이의 관계도 전혀 모를 때니까 서로 볼 거 못 볼 거 다 보고 살았다. 나이가 좀 들어 밖에 있는 여인들과 누나들을 비교해 보니 참으로 한심한 점이 많았다. 일단 누나들은 여자로 보이지 않았다. 저것들이 과연 결혼을 할 수 있을까, 누가 데려가기나 할까, 나라면 절대 안 데리고 산다.

머리가 큰 다음 누나들이 남자들을 사귀고 남동생이라고 데리고 나가 자리를 같이하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이게 뭐지?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지금 눈앞에 있는 여인들이 내가 집에서 보던 누나들이 맞나? 싹싹하고, 부드럽고, 깔끔 떨고, 심지어는 도도한 척도 하니 혼란스러웠다. 순간적으로 앞에 있는 남자가 불쌍해 보였다. 저 남자는 이 여자들의 정체를 알고 따라나온 걸까? 집에 와서 어떻게 그렇게 다르게 행동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조용히 하라고 윽박지른다. 기가 빨린다.

아들과 딸은 키우는 재미가 다르다. 아들은 무뚝뚝하고 시키면 말을 잘 듣는 편이다. 딸은 사근사근하고 착 달라붙어서 애교도 떠니 뭐라도 하나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딸 키우는 건 김치를 곁들여 라면을 먹거나 달걀을 소금에 찍어 먹는 거라고 한다면 아들 키우는 건 김치 없이 라면을 먹거나 소금 없이 달걀을 먹는 거와 같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이다.

애들이 커가면서 아들은 심부름꾼으로 부려 먹기 좋게 자랐다. 딸은 커가면서 나를 쥐 잡듯이 잡는다. 왜 집에 소홀하냐, 도대체 어떻게 매일 귀가가 늦냐, 술은 왜 그렇게 매일 마시냐, 돈 벌어서 왜 혼자만 쓰냐, 엄마는 왜 아빠를 놔 멕이냐 등등 잔소리가 심해진다. 내가 한마디 하려고 하면 도끼눈을 뜨고 쏘아 본다. 기가 눌린다. 당연히 슬슬 피하게 된다. 저걸 누가 데리고 갈지 큰 걱정이라고 생각하면서 가급적 안 부딪히고 산다. 아들도 딸하고는 멀리하면서 심기를 보전하는 것 같다.

식구들하고 정말 오랜만에 외식하러 나가서 또 깜짝 놀랐다. 딸이 종업원들에게 건네는 말을 들어보니 천사나 선녀가 따로 없었다. 예의 바르고 들어서 기분 좋은 단어를 골라서 말하고 표정도 그렇게 상냥하고 부드러울 수가 없었다. 속으로 `아, 정말 가증스럽다.'라는 생각이 절로 떠올랐다. 아들도 나하고 같은 생각인지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다. 집사람은 내 표정을 보고 킥킥거리며 웃고 있었다. 표정으로 동의를 구했더니 모른 척한다. 쟤가 과연 내 딸이 맞는 건가? 어떻게 집에서와 밖에서가 저렇게 다를 수 있는 걸까? 집에 와서 너 어떻게 그렇게 안에서와 밖에서의 행동이 그렇게 다를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쌩하니 찬바람을 일으키며 방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안팎이 다른 사례의 끝판왕은 우리 집 이 여사다. 연애 시절 그래도 분위기가 있었고 내가 하자는 대로 따라 주며 나에 대한 사랑도 돈독한 편이었다. 신혼 시절에는 조금 더 가까워져서 내가 결혼하길 잘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이들이 다 자라 나가고 이제는 둘이 사는데 남녀가 바뀌었다. 밥, 요리? 내 담당이다. 갈수록 반찬 타박이 심해진다. 계속 잔소리하면 더 이상 요리 안 한다고 하니 잔소리하지 말고 그냥 하란다. 오며 가며 한 대씩 때리기도 하고 오만가지 심부름은 다 시킨다.

동료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불쌍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여사와 한 번이라도 만난 사람들은 천사 같은 부인을 두고 그렇게 험담을 하면 안 된다고 오히려 나에게 뭐라고 한다. 내가 봐도 다른 사람들과 만나고 있는 이 여사는 집에서와 정말 다르다. 내외를 하면서 우아를 떠는데 딸의 내숭이 저절로 떠오른다. 당연히 나는 이 여사에 대해 이상한 말을 지어내는 몹쓸 사람이 된다. 나만 이렇게 안팎이 다른 여인들을 겪고 사는 걸까? 여자는 이해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니체의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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