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십 년 동안 영업했던 가게를 정리하는 건 한 번에 `뚝딱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픈 당시 둘이 일했던 곳이라 넓은 만큼 정리할 물건이 많다. 동선을 나누어 버릴 것과 미용실을 하는 지인에게 줄 물건, 중고 미용센터에 보낼 것을 나누었다. 일에 열중하다 보니 슬슬 힘에 부친다.
“아니, 미용실 이사 가요?”
정리하다 보니 덥고 먼지 날려 문을 열어 놓았다. 문틈으로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짐을 싸는 걸 보며 이전하느냐고 묻는 분들, 아픈 걸 어떻게 알았는지 걱정하는 분들이 많다.
문 닫는 걸 모르고 오신 분은 그냥 보내기 뭣해 머리를 손질하며 이젠 하지 않는다는 말 하고 그냥 보내기 아쉬워 손님께 쓸만한 제품을 드렸다.
짐을 꾸리다 음성에서 미용실을 하는 지인에게 갔다. 커다란 박스 두 개와 김장용 비닐봉지에 담긴 물건을 보고 평생을 써도 다 못 쓰겠다며 언니의 폐업이 본인의 기쁨이냐며 이런 기분별로니까 빨리 치료 잘 받고 오라고 울먹인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입원하면 당분간 머리도 감지 못할 테니 생머리보다 펌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내 생각에도 그럴 것 같아 오랜만에 펌을 했다. 구불거리는 머릿결이 생기 있어 맘에 꼭 들었다.
“내일 점심에 시간 어때요?”
“커트하시게요?”
“아니요. 원장님 병원 가시기 전에 밥이나 사드릴까 해서요.”
전화기 속 문경댁 목소리는 여전히 밝다. 두 살 아래인 그녀는 오래된 단골손님이다. 이대로 보내면 섭섭하다며 맛난 밥을 사주며 조심스레 봉투를 건넨다. 화들짝 놀라 거절하는 내게 자기 마음이라며 받지 않으면 다신 안 볼 거라는 귀여운 협박이 따스했다.
뭘 살지 몰라 과일을 샀다며 멜론과 토마토 상자와 항암에 좋다는 찻잎까지 건네는 색소폰 연주를 멋지게 하는 언니, 차를 마시며 좋은 기운으로 꼭 만날 것을 약속하자는 선영 씨, 손톱 네일을 지워 주며 병원에 갈 수 없으니 맛있는 거 사 먹으라며 봉토를 건네는 모텔 사장 호정이, 수술 잘 받고 와서 다시 반갑게 만나자는 향자 언니… 두 손 꼭 잡고 건네받은 봉투가 열 개 넘었다. 그 마음 달아날까 싶어 서랍에 곱게 넣어 두었다.
“너랑 나랑 남매니까 조직도 제일 잘 맞을 거야, 신장 그거 오빠가 떼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수술 잘 받아, 알았지?”
오빠의 말에 내가 있는데 왜 오빠한테 받느냐며 남편이 자기 것을 준단다. 릴레이가 시작이라도 된 듯 아들 둘과 친구, 그리고 지인은 자신들의 콩팥을 하나 떼어 줄 테니 수술 잘 받고 오라고 말한다.
“너는 복도 많지, 좋은 사람들이 기도해 주고 잘 낫기를 빌어 주니 수술 잘될 거야.”
“그래, 그런 것 같아. 콩팥 떼 준다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난 신장이 벌써 열한 개야.”
하며 웃었다. 그렇게 말하는 친구도 준다고 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만나지 못했고 아등바등 살기 바빠 잘 챙기지 못한 내게 자신들의 장기를 선뜻 내어 준다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몽글몽글 따뜻해지면서 그들의 진심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바삐 살았으니 이젠 쉬엄쉬엄 살라는 신이 주신 선물 같다. 보이는 모든 게 아름답고 들이마시는 공기까지 달달했다. 유유자적 베짱이처럼 지내는 이 시간, 오랜만에 느껴보는 세상은 무척이나 평화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