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조국 블랙홀에 빠져 있는 듯하다. 한 개인과 관련된 이슈가 이렇게 오랫동안 끌어온 적은 없었다. 다른 중요한 이슈나 사건들은 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 별다른 관심조차 끌지 못하고 있다.
20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회 대정부질문에서 여야는 조국 법무부 장관을 사이에 두고 날 선 공방을 벌였다. 대정부질문 문답 과정에선 조 장관이 검찰의 자택 압수수색 당시 현장에 있던 검사와 통화한 것이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조 장관은 압수수색에 놀란 아내의 건강 상태를 배려해 달라고 했을 뿐 수사 지휘를 하거나 수사에 영향을 미치려 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명백한 직권남용 행위라며 조 장관 탄핵소추안 발의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자신과 가족 사건 수사에 대해선 보고도 안 받고 지휘도 안 한다고 공언한 조 장관이 부적절하거나 오해 살만한 행위임에는 분명하다. 일반인 같았으면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검찰 역시 정치 과정에 깊숙하게 얽혀 있다는 의혹을 받게 된 상황에서 엄정하면서도 절제된 검찰권을 행사해야 한다.
검찰은 국회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조국 의혹과 관련된 30여곳에 대해 대대적으로 압수수색했다. 심지어 인사청문회 다음날에는 배우자인 정경심 동양대교수를 사문서위조혐의로 기소했다.
급기야 조국 법무부장관 자택을 11시간에 걸쳐 압수수색했다. 수사과정에 빚어진 피의 사실 공표 논란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검찰 공화국 소리가 계속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도 아무런 간섭 없이 검찰이 수사하고 있는데도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현실을 검찰은 성찰하라고 말했다. 법, 제도 개혁뿐 아니라 검찰권 행사의 방식과 수사 관행 등의 개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면서 검찰이 검찰 개혁의 주체임을 명심하라고도 했다. 검찰청 앞 촛불 시위 여론에 힘입은 듯하다.
서초동 검찰청사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놀라울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렸다. 집회 참가자들의 목소리가 조국에서 검찰개혁으로 바뀐 형국이다.
야당은 광화문에서 조국 퇴진 집회를 열었다. 조국 블랙홀이 50일 넘게 이어지면서 국론도 조국 지지와 반대 두 진영으로 나눠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을 하게 하고 있다.
조국 블랙홀 정국이 계속되는 것은 정상적이지도 결코 바람직하지도 않다. 광장과 길거리에서 세 대결을 펼치는 것 역시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민생 법안 처리와 내년도 예산안 심사, 선거법 개정 등을 조국 이슈가 집어삼키고 있어 국민은 어지러울 지경이다. 조국 이슈에 피로감을 느끼며 이제 지겹다는 반응이 곳곳에서 나온다. 조국 블랙홀 정국은 하루빨리 끝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회에서 야당의 협력이 필요하지만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대통령과 여당이 조 장관을 고집하는 것은 야당을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과 같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정국이 내년 4월 총선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파 대결과 진영 논리가 더 강고해지는 흐름 때문이다.
혼란한 이 정국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가 하루빨리 나와야 그나마 정국 진정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엄중한 한반도 주변 정세와 경제 문제를 생각하면 여야 정치권은 조국 논란은 검찰 수사를 지켜보며 민생 의제들부터 시급히 다루는 지혜를 발휘해 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