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질서라는 질서
무질서라는 질서
  •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8.08.02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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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무질서, 무작위, 혼동 등은 아무런 규칙이 없고, 예측이 불가능한 어떤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정말 무질서하면 할수록 예측은 점점 어려워질까? 그리고 완전히 무질서해지면 예측은 완전히 불가능해지는 걸까?
주사위 던지기는 무작위 현상의 대표적인 사례다. 던질 때마다 몇 번이 나올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확률적으로만 예측할 수 있다. 한 번 던졌을 때, 1이 나올 확률이 6분의 1이다. 그렇다고 6번 던지면 반드시 1이 한 번 나오는 것도 아니다. 바로 다음에 1이 나올 수도 있고 10번 던져도 1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확률이 6분의 1이란 그냥 확률일 뿐이다.
그런데 주사위를 600번을 던지면 어떻게 될까? 1이 정확히 100번은 아닐지 몰라도 아마 거의 100번 나올 것이다. 6000번을 던진다면 1이 아주 거의 1000번 나올 것이다. 만약 6억번을 던진다면 이번에 1이 1억번 나온다고 해도 거의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 횟수가 적을 때는 확률적 예측은 매우 부정확하지만, 수가 많아질수록 확률적 예측은 점점 정확해진다.
공기는 수많은 분자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입으로 후 불면 나가는 공기분자의 수가 어림잡아 개다. 무슨 억, 조 정도의 수가 아니다. 1조라고 해야 고작이다. 1조의 1조 배나 되는 수이다. 이름을 붙일 수 없이 많은 수다. 이런 수많은 분자가 중구난방으로 운동하고 있는 것이 공기다. 오른쪽으로 날아가는 놈, 왼쪽으로 날아가는 놈, 빨리 달아나는 놈, 천천히 달아나는 놈, 공기 분자들의 운동은 정말 완전한 중구난방이다. 이렇게 중구난방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
나는 공기분자들의 운동을 직접 관찰하지 않아도 정확히 알 수 있는 사실이 있다. 정육면체인 상자에 공기가 들어 있다면 나는 1초 동안에 한쪽 벽을 때리는 공기분자가 몇 개인지 어렵지 않게 계산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맞는지 실험으로 확인도 할 수 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그것은 공기가 아무런 규칙도 없이 중구난방으로 운동하기 때문이다. 만약 공기가 생각이 있어서 중구난방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이리로도 가고 저리로도 간다면 나는 공기분자들이 어디로 갈 것인지 예측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기분자는 생각도 없이 중구난방으로 운동한다. 그것도 무지무지하게 중구난방으로 운동한다. 그래서 예측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질서가 없어서 생기는 질서, 얼마나 모순처럼 보이는가?
이런 공기분자의 중구난방 운동을 연구하는 학문이 통계역학이다. 통계역학은 매우 정확한 학문이다. 공기의 온도를 얼마로 높이면 압력이 얼마가 될 것인지 정확하게 예측한다. 이렇게 예측이 가능한 까닭은 공기분자의 수가 어마어마하게 많기 때문이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선거를 할 때 여론 조사를 한다. 여론 조사가 어떤 때는 잘 맞고 어떤 때는 잘 맞지 않는다. 우리나라 유권자 수는 4천만명이 넘는다. 매우 큰 숫자다. 하지만, 그래 봐야 밖에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여론 조가가 아주 정확하기는 어렵다. 만약 인구가
명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선거를 할 필요도 없이 정확히 예측이 가능하다. 공기분자들이 어떻게 운동할 것인지 대학의 물리학과 초년생도 정확히 알아낼 수 있듯이 여론조사나 인구 통계는 어마어마하게 정확해 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매우 정확한 경제정책을 수립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즈음처럼 경제 예측이 빗나가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 인구를 다 합쳐도 도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여론 조사와 경기 예측이 공기분자들을 다루는 통계역학만큼 정확할 수는 없다.
고전역학과는 달리 양자역학은 자연이 본질적으로 무질서하다는 것에 바탕을 둔 학문이다. 무질서의 본성을 가진 자연이 이렇게 믿음직스런 모습으로 우리 주위에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기만 하다. 그리나 조심해야 한다. 자연이 언제 그 무질서의 본성을 드러내고 우리를 배신할는지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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