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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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대헌 <에세이스트>
  • 승인 2016.12.29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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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헌의 소품문 (小品文)
▲ 강대헌

# 본다(See)

근이양증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임재신은 진행성 난치병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앞을 못보는 이동우를 시시때때로 바라봅니다.

서로 친구가 돼 제주도로 함께 여행을 갔다가 의기투합해 말합니다.

“그래, 우리 한 번 살아 보자!”

아침 일찍 눈을 떠도 세상이 여전히 보이지 않는 동우이고 이미 말라버린 몸의 작은 일부조차도 꿈틀거릴 수 없는 재신이지만, 그들은 너무 외로워하지 말자고 약속처럼 다짐을 합니다.

보는 것 대신에 듣는 것으로 바람의 방향을 가늠한다는 동우에게 재신이 화답합니다.

“나도 눈을 감아봐야겠네….”

보는 것으로 인해 현혹되기 쉬운 우리들은 본질적인 것을 놓치며 살고 있군요.

그날 하루를 온전히 살아낼 수만 있다면, 삶의 좌절 같은 것은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오늘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나요?



# 보았다(Saw)

살면서 이미 본 것에 사로잡히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걱정도, 슬픔도, 환멸도, 공포도, 무기력도, 때론 아름답지 않은 것도 이미 충분히 보았으니까요.

싫으면서도 거듭 반복하는 게 더 문제인 것 같군요.

바람이 세게 불면 재신은 고개를 떨구게 됩니다. 고개조차도 스스로 지탱할 수 없어서요. 재신의 말을 들은 동우는 이내 그의 고개를 일으켜 세워줍니다.

그들에겐 값싼 동정의 눈빛 같은 건 없습니다. 정말 인간적인 교감만 오고갑니다.

동우가 말합니다, “살다 보면 이유 없이 불행이 찾아올 때도 있다. 힘들지만 받아들이고 나면 새로운 세상 펼쳐진다.”

우리들이 보는 것이 결국 본 것이 되고 맙니다.

오늘 당신이 본 것은 무엇인가요?



# 동우와 재신

동우는 딸 지우의 얼굴을 보고 싶어 합니다.

재신은 딸 다솜의 볼을 쓰다듬어 주고 싶어 합니다.

그들에겐 많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에겐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이 하나씩 있습니다.

그들은 죽어서 나무로 태어나길 원합니다. 숲 속 한 그루 나무들로 만나길 원합니다.

“형, 내가 보여?”(재신)

“그럼, 네가 내 앞에 서 있어.”(동우)



우리들도 그들처럼 그저 같이 살아갔으면 합니다. 서로에게 몸을 기울인 채, 가만히 옆에서 지켜봐 줍시다. 그거면 되는 거 아닌가요?

고희영 감독의 영화 `시소(See-Saw, 2016)'를 통해 말로 다할 수 없는 위로와 응원을 받았습니다. 오늘이 곧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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